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 - 이념논쟁의 극복을 위한, 실증 정치경제학 입문
좌승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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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를 읽고-

 

좌승희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저자는 이 책에서 경제의 본질은 첫째,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할 수 있다는 상생과 동반발전을 실현하는 장()이며, 둘째, 경제발전 관점에서 기업이 주도하는 기업경제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념 논쟁으로 분배와 성장을 모두 놓치고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드는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을 되돌아보고자 했다. 더불어 이제까지 경제학은 분배 기능을 위한 경쟁시장을 강조했을 뿐 상호작용과 시너지 효과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모순론에 기반해 평등 분배를 지향해왔지만 부의 평등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발전을 희생시켰다고 본다. 모두가 불행하고 하향평준화 되는 마차(馬車)경제(마차의 수량만 늘리는)’를 선택할 것인가, 불평등이 있더라도 모두가 발전하는 자동차·비행기 경제(마차경제에서 새로이 창발한 질적 도약)’를 지향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발전의 문제는 자유·평등·정의·공정 등 이념의 문제다. 이는 정치철학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는 이념의 실현과정이며, 이념은 정치와 입법활동을 통해 한 나라의 경제제도를 결정한다. 사회정의나 공정사회에 대한 사회의 통념도 이념과 마찬가지로 정치과정을 통해 국가 경제제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경제적 노력과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경제결과의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이념, 또 이러한 정의관 정립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념들은 궁극적으로 시장의 경제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물론 국민경제의 성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주류경제학에서 이러한 이념의 문제를 소홀이 다룸으로써 자본주의 경제는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모순된 체제라는 인식을 갖게 한 것이 사실이다. 이념의 문제가 정치철학의 문제로 다루어지고 경제철학에서는 배제됨으로써 오히려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념의 문제는 더 이상 정치·사회철학의 문제나 경제학의 외생변수가 아니다. 이념과 정의관을 내생변수화해 경제선택변수로 다룰 수 있는 경제발전이론 정립이 경제철학에 있어 중요하다.

 

이념 문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로 싱가포르 리콴유와 탄자니아의 니에레레를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영국에서 동시대에 유학을 했고 각각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독립 후에는 국가지도자로서 20여 년간을 철권통치를 하는 등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달랐다. 니에레레는 국가발전에 실패했고 리콴유는 성공했다. 리콴유는 마실 물조차 변변치 못하고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부의 철학이념을 내세웠지만 니에레레는 내가 가난하게 사는 것은 네가 풍요롭게 살기 때문이다며 사회주의 이념인 우자마를 주창했다. 우자마는 국가 통제아래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자는 이념이다. 우자마를 가장 중요한 국가목표로 내세운 니에레레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 탄자니아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는 결국 자신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시인했다. 이는 자선의 미학을 사회 이념으로 나라를 이끈 결과다.

 

이렇듯 이념은 비공식적 제도지만 헌법 등 공식적 제도의 방향과 그 내용에 영향을 줌으로서 국가경제 전체의 성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좋은 이념, 이상향적 이념보다는 현실적이고 옳은 이념이 중요하다. 니에레레가 추구했던 우자마 이념처럼 단순히 아름다운 이상을 이념화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모든 시장거래는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상향의 이념은 엄청난 거래비용을 발생하게 하여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경제발전의 저하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나아가 양극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사회가 모두 하향평준화 되고 마는 것이다. 경제는 전형적인 복잡계(Complex system)이기 때문에 불평등과 차별화를 피할 수 없다. 시장은 차별화의 장이다. 시장은 차별화를 통해 경제 주체 모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로 작용하면서 각자의 능력을 개발시키고 전문화를 이루며 창발, 진화한다. 차별화를 무시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계획경제나 사회주의 경제는 반드시 실패한다라는 것을 지난 세기 말()에 정확하게 입증하지 않았는가.

 

저자는 기업의 경제발전 역할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발전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라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라 하기보다 기업경제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정도로 자본주의 경제발전에서 기업의 중요성은 지대하다. 기업 없이 경제발전은 시작될 수도 지속될 수도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는 바로 기업경제다. 저자는 경제 발전사에 있어 흥하는 일류 기업들의 집적(集積) 없이 경제선진화를 이룬 나라는 없다. 기업의 성장사가 곧 국민경제의 성장사다.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나라는 흥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경제 정체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산업혁명은 기술혁신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기술혁신을 상업화하여 부가가치를 증가시키는 사회적 기술인 기업이 등장하면서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 15천년의 교환경제 기간 중 최근 20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은 바로 기업이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다.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의 기술혁신 뿐만 아니라 존 로벅, 매슈 볼턴 가 같은 기업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업가가 증기기관을 상업화함으로써 전 산업분야에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고 이러한 것 들을 주변국들이 무임승차하며 복제·발전·증폭시킴으로써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부의 원천이었던 토지를 대체한 게 현대의 기업이라는 논지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일자리를 창출·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소득증대와 아울러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가장 훌륭한 복지다. 국가가 행하는 일자리 제공은 새로운 부의 창출 없이 단지 있는 일자리를 나누는데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의를 비판한다. 흥하는 경제주체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성장하는 기업을 따라 배워야 하는 게 경제발전의 원리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차별화가 아닌 하향평준화로 가는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청산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일자리 창출의 주체라며 추켜세워지기도 하는 것이 현재 기업의 현실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경제학은 기업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한 신 발전원리가 바로 실증 정치경제학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등소평의 선부론(先富論: 부자 따라 배우기)을 내세워 일본과 한국을 모델삼아 국가발전을 도모했다. 나아가 중국은 일본의 선진국 함정과 한국이 일본의 성공 노하우뿐 아니라 실패한 정책(지역 균형발전, 서구식 복지, 평준화(유도리) 교육, 경제민주화 등)마저 따라함으로써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겠다고 한다.

 

끝으로 저자는 이제 우리는 이념과 사회정의관의 패러다임을 발전친화적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이념을 선택해야 발전과 삶의 윤택함이 따라온다는 지적이다.

 

2013312

미래로독서회 회장 박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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