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집 7 안데르센 동화집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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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이야기》는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여러 해 동안 이 책은 내 조국에서도 국경 너머 먼 곳에서도 어른, 아이 모두에게 두루 읽혔다. 이런 축복을 받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나는 성경에서 '열의 일곱 배'라고 말하는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나이에 이르렀으니, 이런 행복한 일도 분명 끝이 가까워지고 있으리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남아 있는 내 재산인 156편의 동화와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엮을 것이다. 이제 동화 <펜과 잉크병>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시인이 했던 말로 끝을 맺을까 한다. 만약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냈다면,
오로지 신께 영광을!


1874년 9월 6일 롤리헤드에서
H.C.안데르센





안데르센이 생애 저술한 212편의 동화 중 본인이 직접 157편의 단편들을 엄선하여 만들었던 단편집을 목차순으로 번역하여 만든 시공주니어판 《안데르센 동화집》완역집! 2010년 8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이어진 시공주니어의 대프로젝트 작품이다. 그중 2016년 1월에 발행된 따끈따끈한 7권(마지막권)을 책콩 이벤트 도서로 받아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에 앞서 책 맨 뒷장에 각 권당 실려 있는 단편의 목차부터 먼저 훑어보았다. 안데르센의 동화, 나는 어디까지 읽어 봤나. 우리에게 친근한 단편동화들 -<인어 공주>,  <완두콩 위에서 잔 공주>, <눈의 여왕>, <엄지 아가씨>, <성냥팔이 소녀>- 은 1~3권에 전부 들어 있고, 내가 받은 7권은 전부 낯선 이야기들(총22편)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안데르센은 생전 자신을 '어린이 작가'로만 한정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내가 이 책 <안데르센 동화집>에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나, 《어린 왕자》처럼 안데르센의 동화는 어른이 되어 읽으면 느끼는 바가 더 많겠다. 둘, 시공'주니어'에서 만든 완역본은 성인이 읽기에 부족한 점이 전혀 없구나.


개인적으로 7권에서 인상 깊게 읽은 단편 몇을 꼽자면 <정원사와 주인 가족>, <현관 열쇠>와 <앉은뱅이>를 꼽는다. <정원사와 주인 가족>에는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곳에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려주는 뛰어난 실력의 정원사 라르센과 그가 꾸민 정원의 진가를 몰라주고 애써 그의 실력을 폄하하는 주인 가족이 등장하는데, 안데르센은 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외국에서 먼저 호평받고 난 뒤에야 고국에서 인정받는 자신의 현실을 풍자했다. 뿐만 아니라 이 단편에는 다양한 식물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안데르센은 겨울에도 들판과 도랑에서 찾은 식물들로 꽃꽂이를 할 만큼 식물에 조예가 깊었다 한다. 라르센이 공주에게 바친 솜엉겅퀴꽃은 안데르센이 직접 길러본 경험이 있으며, '힌두스탄의 수련꽃'은 그가 솜엉겅퀴꽃에 지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또, 라르센이 겨울에 참새를 위해 귀리 다발을 매달아 놓는 것은 덴마크에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 풍습이라고.

<현관 열쇠>에는 매사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지 못하고 열쇠 점에 의지하여 모든 판단을 내리는 주인공을 통해 19세기 중반에 유행한 심령주의 경향을 보여주는데, 심령주의는 당시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으로 인해 물질적 풍요가 불러온 정신적 결핍을 메우려 생긴 새로운 풍조로, 안데르센 역시 독일에서 '지적이고 의식 있는 사람들'을 통해 열쇠 점 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시스텐스 공동묘지에 안드르센이 잠들어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침대에서만 지내는 앉은뱅이 소년 한스가 읽어준 이야기책 덕분에 그 부모가 시야를 넓히고 참된 삶을 이해하고 배우게 된다는 내용의 단편 <앉은뱅이>는 안데르센이 본인이  쓴 글(이야기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담고 있는 다른 단편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처럼 동화의 치유력을 믿는 안데르센의 신념이 전해져온다. 안데르센은 이 이야기를 두고 '동화 문학에 바치는 일종의 경의로써(…)모든 동화집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걸맞으리라'고 밝혔다고 한다.


작품 해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안데르센이 말하고자 하던 바를 이해한 단편은 <그레테 닭할머니의 가족>(17세기 실존 인물 마리 그루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란다.)과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어렸을 때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안데르센 자신을 가장 잔혹하게 그린 자화상으로 평가받는다고. 특히, 라스무스와 요하네처럼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다는 구성은 안데르센이 <눈의 여왕>, <이브와 어린 크리스티네>, <버드나무 아래서>에서도 안데르센이 즐겨 다룬 바 있다.)다. 결코 한 번의 완독으론 안데르센이 이야기 속에 담아놓은 바를 바로 캐치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더라. 책 앞장과 뒷장에 붙은 작품 해설은 작가 안데르센과 덴마크 문학이 낯선 독자들에게 매우 도움되는 부록이다. 국내 몇 안되는 <안데르센 동화집> 완역판 중에서도 시공주니어판 <안데르센 동화집>은 157편 동화 모두에 전문 해설이 수록된 국내 유일본이라고 하니 소장가치가 더욱 높을 듯 하다.


아, 두말하면 입 아프게도 이 책의 책 표지 디자인은 매우 예쁘다. 세트로 모두 모아놓으면 매우 뿌듯할 것 같다. 얼마 전에 산 <빨간 머리 앤>처럼 안데르센 동화집 전권도 내 책장에 조르륵, 꽂아두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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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드리아스가 동경하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쉬지 않고 날아가야 합니다! 하루살이에게 휴식은 없습니다. 하루살이의 삶은 쉼 없이 나는 거지요.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 p.32)


"천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진짜 행복했어! 그 사람들은 쉽게 불멸의 시인이 될 수 있었으니까.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 무렵까지는 시로 만들 것들이 제법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시로 지을 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대체 나더러 뭘 쓰란 거야?" (p.90)


"남들이 다 써 버려서 더 이상 쓸 게 없어요!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고요."

할머니가 맞받았어요.

"다르다마다! 옛날엔 나 같은 점쟁이 할멈은 화형감이었고, 시인은 배를 쫄쫄 곯으며 팔꿈치에 구멍이 난 옷을 입고 다녔지. 지금이야말로 좋은 세상이야. 아무렴, 더 없이 좋은 세상이고말고! 그런데 젊은이는 세상을 보는 바른 눈도 없는 데다 귀마저 먹었구먼. 더구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기도문'을 외지도 않겠지? 시를 짓거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온 사방에서 글감을 얻을 수 있어. 밭작물 속에서 꺼낼 수도 있고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에서 건져 올릴 수도 있지. 다만 방법을 모르면, 그러니까 햇살 붙잡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 소용없지. 자, 내 안경을 쓰고 내 나팔 보청기를 귀에 대 보게!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 자기 생각은 그만하고."

점쟁이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지키기가 몹시 어려웠어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죠. (pp.92-93)


"그럼 시로 먹고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시인들을 때리면 돼. 글로 시인들의 시를 마구 두들겨 주는 거지. 그건 시인들을 때리는 것과 같거든. 양심에 꺼릴 것 없이 과감하게 때려눕혀. 그럴면 자네와 자네 마누라 두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빵을 얻을 수 있어."

젊은이가 감탄했어요.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그러고는 시인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눕혔어요. 자기가 시인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좋은 생각, p.96)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 있는 법이야."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덴마크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하얀 나뭇조각을 입에 물면 자기 모습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알맞은 나뭇조각이어야 해요. 하느님이 행운의 선물로 내려 주신 나뭇조각 말예요. 하느님은 그런 나뭇조각을 내게 주셨어요. 그래서 나도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짤랑거리는 금화를, 반짝거리는 황금을 모을 수 있어요. 황금 중에서도 가장 좋은 황금을요.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눈에서 빛나는 황금, 아이들의 입에서 울리는 황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흘러나오는 황금이죠. 사람들이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면 나도 그 방에 함께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한테는 내가 보이지 않아요. 나는 하얀 나뭇조각을 물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읽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이렇게 말하죠.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 p.102)


"네가 말한 시계 장치 속에는 교훈이 있어. 네 이야기를 들으니 또 다른 시계가 생각나는 구나. 우리 부모님이 쓰시던 낡은 벽시계, 납추가 달린 간단한 장치의 벽시계 말이다. 우리 부모님 시대와 내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시간을 재는 기계였어.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움직였어. 우리는 시곗바늘을 읽고 시곗바늘을 믿었을 뿐 그 속에 있는 톱니바퀴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단다. 그 무렵에는 국가 구조도 마찬가지였어. 다들 안심하고 국가를 바라보고 국가가 가리키는 것을 믿었어. 하지만 요즘 국가 구조는 유리 시계 같아졌어. 속의 구조가 훤히 드러나서 톱니바퀴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것이 다 보이잖니. 축이나 톱니바퀴가 보이면 불안해지고 이 장치가 정말로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지지. 그러면 시계가 정확하다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은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것이 현대의 약점이라고."

(…)증조할아버지와 프레데리크 형은 의견이 똑같은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하지만 두 사람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마치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처럼' 말입니다. (증조할아버지, p.135)


일 년이 지난 어느 고즈넉한 밤, 고문관과 로테 레네는 함께 앉아 있었어요. 그때 재무 고문관이 열쇠에게 물었어요.

"나는 결혼을 하게 될까? 한다면 누구와 할까?"

이제 고문관의 등을 떠밀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고문관이 열쇠를 떠밀었고 열쇠가 대답했어요.

"로테 레네!"

이렇게 해서 로테 레네는 재무 고문관의 부인이 되었답니다.

"승리와 행운."

언젠가 들었던 말이죠. 현관 열쇠한테서. (현관 열쇠,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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