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유발자들 - 인간 심리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소셜미디어의 뒷이야기
맥스 피셔 지음, 김정아 옮김 / 제이펍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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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NS의 이모저모, 그리고 그 저변의 메커니즘

우리는 각종 SNS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 패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예로 든다면, 주로 어떤 피드와 스토리가 어느 정도의 주기로 업로드되는가를 살핌으로써 해당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의 관심사, 시기마다의 고민거리, 전반적인 세계관, 심하게는 소득수준이나 직업, 학력, 사회적 지위 등에 이르기까지 꽤나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지요.

서평 쓰기를 즐겨하는 사람,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 수험공부를 기록하는 사람,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 피아노 연주를 열심히 올리는 사람, 개나 고양이에 푹 빠져 있는 사람, 자녀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꼼꼼히 남기는 사람, 스스로의 모습은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을 엿보기만 하는 사람,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업 광고 계정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수년, 길게는 십수년 이상 다듬어져 온 SNS 플랫폼의 자체 추천 메커니즘은 이 모든 유저들이 갖는 각각의 니즈와 욕망의 범위를 빠르고 정교하게 캐치합니다. 서평을 주로 올리는 계정에는 스토리 사이사이에 서평단 모집 게시물을 추천하고, 고양이에 관한 게시물을 많이 올리는 사람에게는 좌측 하단의 돋보기 버튼을 누를 때마다 사랑스러운 고양이 사진과 릴스를 잔뜩 띄워주는 식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추천 메커니즘의 압력이 사용자를 플랫폼에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두려는 방향으로만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더 많은 광고, 더 많은 영상, 더 많은 사진을 쏟아낼 뿐, '이만하면 충분하니 우리 앱을 끄고 조금 쉬실 시간입니다'라고 일러주는 자상한 SNS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밤에 침대에 누워 '쇼츠나 릴스 조금만 보다 잘까' 하며 무심결에 앱을 켰다가, 어느새 한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경험, 많이들 있으실 거에요.

이쯤에서 심각한 화두 하나를 던져봅시다.

만약, 이러한 추천 메커니즘이 인간사회의 보편적 미덕에 반(反)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개발자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사용자의 무의식이 범람하는 가짜뉴스에 대한 믿음과 이미 입증된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의심을 키우도록 암암리에 유도하고 있다면? 나아가, 그것이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지역사회, 도시, 국가, 민족 단위의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성향을 부추기는 쪽으로 악용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저자의 위기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2. 플랫폼을 틀어쥔 글로벌 SNS기업들을 통렬히 고발하다

202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유수의 SNS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 - 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활자나 음성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시각 정보, 요컨대 주로 사진과 동영상의 형태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 19세기가 소설의 시대, 20세기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가히 유튜브와 쇼츠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맨날 쇼츠만 보면 문해력이 떨어지니 책 좀 읽으라'는 지식인들의 일갈조차도 유튜브를 통하지 않고는 널리 전달되기 어려운 사정이니 말 다 했지요.

둘째,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창구를 통해, 인류 구성원 개개인에 대해 유사 이래 어느 시대의 어느 미디어보다도 압도적인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 이로 인해 그들(특히 경영진의 의사와 프로그래머들의 철학)이 인류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떤 방향으로든 나날이 커져가는 것을 결코 손놓고 바라만 볼 수는 없다는 당위성이 생깁니다.

셋째, 기업의 지상목표는 구성원과 주주들을 위한 이윤의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제1교리를 이들 기업 역시도 철저히 따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술했듯, SNS플랫폼 기업이 이윤을 얻는 가장 확실하고 막강한 수단은 유저들의 앱 내 체류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림으로써 광고 클릭수를 증가시키는 것임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넷째,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고 지탱해온 '유저 친화적 추천 메커니즘'의 구체적인 설계도와 작동방식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는 점. 머신러닝이라는 것이 적용되기 시작된 이후로는 심지어 메커니즘의 개발과 운영을 총괄하는 각 기업의 수석개발자들조차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몇몇 가능성에 대한 추정만이 가능할 뿐입니다'라고 말끝을 흐리는 '메커니즘의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실들에 더하여, 저자는 본업인 기자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합니다.가짜뉴스나 극단적 정치세력에 SNS를 통해 현혹된 사람들에 대한 취재, 주요 기업들의 경영진 및 개발진과의 인터뷰, 그리고 SNS를 직접 이용하며 관찰하여 얻어낸 증거들을 쌓아나가지요.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다소간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SNS기업들은 광고수입의 증가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그들이 응당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감은 도외시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점점 더 많은 사용자가 점점 더 많은 게시물에 노출되도록 만드는 것 뿐이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좋아요, 댓글, 추천 메커니즘 등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나 극단적 정치성향이 널리 전파되는 경우가 이미 무수히 보고되었지만, 그들은 이에 대해 두루뭉술 말끝을 흐리며 책임을 회피하려 애쓸 뿐이다."

3. 구조 개선의 근본적인 한계

앞서 말했듯, 이제는 어쩌면 개발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다 해도 때가 늦어버렸는지 모릅니다. 각각의 SNS플랫폼을 완전 초기화 후 새로 출범시키지 않는 한(물론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요), 개발자들조차도 완벽히 이해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이 이미 우리 삶의 일부로 깊숙이 스며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마지막 장을 덮는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았습니다.

4. 의아한 점 한 가지

저자 맥스 피셔는 뉴욕타임즈의 국제부 기자입니다. 뉴욕타임즈의 정치색에 대해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은 저자의 명백한 정치색입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 자체를 터부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주관을 피력하는 데에 어떠한 자제심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트럼프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너무나 당당한 이 편향성에 대해 다소간 의아한 마음이 듭니다.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다면,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는 절대악 트럼프에 대응하는 절대선이었까요? 왜 저자는 민주당 진영의 비리나 그들도 역으로 SNS를 이용한 정치공작, 선전선동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있는 것일까요?

5. 재밌는 점 한 가지

SNS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을, SNS 서평단 모집을 통해 알게 되고, 그에 대한 서평 또한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며, 과연 SNS의 영향력이 굉장한 시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유명한 장편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화자가 '책 따위 읽어 무엇하오?'라는 자유인 조르바의 사상에 동의하던 대목이 떠오릅니다. 왜냐면, 책 읽기라는 행위 자체를 맹목적으로 반복하며 또 신봉하는 이른바 책벌레들의 행태를 비웃는 조르바의 의견조차도, 다름아닌 책의 지면을 통해 저에게 전달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구석이 있지요? :)

* 이 서평은 제이펍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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