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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지옥 같아서
이지선 지음 / 알발리 / 2023년 11월
평점 :
1. 시의 독법
부끄럽지만 용기내어 고백하자면, 저의 독서 편력은 운문보다는 산문, 그 중에서도 특히 자연과학의 고전과 중단편소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로 인과관계가 분명하여 구조의 파악이 쉽다는 것, 그리고 직선적인 서사로 단일한 진리의 전달 혹은 한두 가지의 문학적 효과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발점과 도착점이 명확한 중/단거리 달리기에 빗댈 수 있겠네요.
그래서일까요, 시를 습작하거나 시집을 읽을 때면 저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지고, 행동이 둔화되고, 키보드 위를 노니는 손가락이나 펜을 쥐고 지면을 누비는 손목의 율동이 눈에 띄게 느려짐을 스스로 느낍니다. 시의 작법과 독법, 둘 모두 산문의 그것과는 크게 다른 까닭이겠지요.
시의 언어는 중층적이고 함축적입니다. 툭하면 근처에 있는 것들을 요소 별로 쪼개고 뜯어 이해한 후 다시 조립하려는 근대적 정신과는 영 상성이 좋지 않아요. 오래전 보았던 '은교'라는 영화에서 늙은 시인이 공대생 출신의 문하생에게 '네놈은 처음부터 싹수가 글른 놈이었어!'라며 일갈하던 대목이 떠오르는군요. 저야 문과도, 이과도 아닌 영원한 주변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각설, 그럼에도 이따금 시집을 찾고, 시인들에게 손내밀어 이야기를 청하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분석될 수 없는 인간성의 복잡미묘한 무언가, 더 이상은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다움의 실체에 대해 늘 궁금해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말조차 너무나 시와는 거리가 먼 것이려나요.
2. 작품의 짜임새와 흐름
시집은 크게 세 부분 - 절망, 외로움, 다시 시도 - 으로 구성됩니다(제 자신의 임의적 구분이 아닌, 시인이 스스로 세워 놓은 이정표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각 챕터의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시인은 먼저(제1부) 내면의 심연으로 침잠합니다. 다음(제2부)으로는 철저히 혼자 되어 그 해저를 충분히 헤매고, 마지막(제3부) 조금씩 삶을 긍정하며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본인 영혼의 여정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3. 시인의 마음 헤아려 보기
'내 마음이 지옥 같아서'라는 강렬한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인의 마음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있었을 삶의 갖은 시련들로 인해 이미 쑥대밭이 된 상태였을 겁니다. 초토화된 정신으로 한 편 한 편 시를 구상하고, 고르고 고른 시어들로 뼈대에 살집을 붙이고, 시집을 기획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거에요.
문학은 자기구원의 발로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고등학교 문학시간이었지만, 그 참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거의 서른이 다 되었을 무렵인 것 같습니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로부터 울며 도망쳐본 적 있는 사람,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 있는 사람, 더 이상은 울 기력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지쳐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집에서 많은 위안을 얻어가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2022년에 등단, 첫 시집을 출간하고 작년 말(2023년 11월)에 두 번째 시집을 낸 시인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고 비평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진심을 다하여 시인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응원합니다.
3. 덧붙임
- 이 서평은 알발리 출판사(@bookstore_abyss)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책들을 많이 펴내주세요. 알발리 출판사와 서점 마계의 무궁한 번창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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