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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8 - 차이콥스키, 겨울날의 찬란한 감성 ㅣ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3년 12월
평점 :
1. 들어가며
스물한 살, 피아노라는 악기를 처음 접한 이후 아마추어 클래식 애호가로 살아온지도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곡은 난이도를 가리지 않고 일부분이라도 반드시 직접 연주하며 음표마다 녹아있는 작곡가의 체취를 느끼려 애써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노다메 칸타빌레>나 <피아노의 숲>과 같은 드라마/만화로부터 시작하여, 이 방대한 세계를 다룬 컨텐츠들을 적잖게 접하게 되었지요.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한 교양 도서'라는 기획의도 아래 그간 국내 출판시장에 고개를 내민 책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별 기대없이 펴들었다가 음악을 향한 저자의 뜨거운 정열과 심오한 통찰로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책들이 있는가 하면, 띠지 및 앞뒤 표지, 책날개의 미사여구에 혹해 샀다가 조잡한 구성에 실망스러움만 느끼며 구석으로 영영 치워버린 책도 적지 않습니다.
이 책은 어떠냐구요?
오랜만에 만난 정성 가득한 안내서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따위의 지겹고 또 진부한 말을 더듬더듬 늘어놓을 맘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보다도, 책의 훌륭한 짜임새 자체를 놓고 이모저모 칭찬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자, 시작합시다.
2. 이 책의 특징
(1) 짧은 서문만을 제외하고, 본문 첫 장에 진입하면 가상의 수강생, 요컨대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지만 수업참여(질문 및 자신의 의견 개진)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의 존재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가 퍼붓는 이런저런 물음에 대해,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인 저자가 친절하게 호응하며 강의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내용이 전개됩니다.
(2) 통상의 클래식 관련 교양서에 비하면, 전달되는 지식과 그 방법의 레벨을 의도적으로 매우 낮게 잡았음이 분명합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이 이상 친절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평이한 설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문답식의 진행에 더하여, 각 챕터의 말미에는 아예 '필기 노트'라는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해당 챕터의 내용을 요약해주기까지 합니다.
(3) 시청각자료가 매우 풍부합니다. 본문 중 언급되는 주요한 인물에 대하여 사진 또는 초상화를 반드시 첨부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은 주요부분만 발췌하여 눈에 띄게 분리해두었습니다. 또한 본문 중 언급되는 대부분의 곡들에 대해서는 스마트폰으로 QR코드만 스캔하면 즉시 유튜브의 해당 곡 연주가 링크됩니다. 여러 모로 우리 시대 기술문명의 편의를 실로 시의적절하게 이용한 모범적인 사례라는 생각입니다. 기획 단계에서의 여러 아이디어를 완성된 책에서 구현해내기까지 편집팀에서 들이셨을 노력을 생각하면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4) 개별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해 소개한다는 점에서, 포노 출판사에서 꾸준히 펴내오고 있는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와도 자연스레 비교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는 통상 주인공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이 책은 작곡가의 생몰년도를 앞뒤로 둘러싸고 풍부한 배경지식을 깔아놓고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총 5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제1장에서는 차이콥스키 탄생 직전의 서유럽/러시아의 문예 사조의 흐름 및 역사상의 주요 사실들을 소개합니다. 제5장에서는 차이코프스키 사후 그에게 영향받은 후배 작곡가들의 특징과 작풍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연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바그너 등을 다루며 이미 7권이나 책을 펴낸 저자의 노련한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3. 나가며 & 덧붙임 몇 가지
- 이 서평은 사회평론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기 작품이 사후에도 널리 알려지는 것이야 뿌듯하겠지만, 평생 여러 사람과 주고받은 수천 통의 편지가 음악사학자들에 의해 모조리 까발려진다 생각하니 차이콥스키 정도 되는 대가는 죽어서도 마냥 편안할 수만은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새로 치면 고인이 평생 주고받은 카톡방이나 DM창이 모조리 인터넷 상에 공개 및 박제되어버리는 셈인데... 과연 월클의 삶이란 피곤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