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은 적이 있을 겁니다.
'나는 누구지? 내가 느끼는 것이 상상은 아닐까?'
저 역시 어릴 때부터 비슷한 질문을 던졌고,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사르트르는 저에게 나름의 해답이 되어주었습니다.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며 스스로를 만들어 나간다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의 주인공입니다.
물론, 존재에 대한 문제는 결과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존재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수학과 물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학과 물리를 통해 세상과 우주를 더 알아갈수록, 저는 스스로의 존재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거울이 더 맑고 깨끗해질수록, 제가 더 잘 보이는 것처럼요.
비록 수박 겉핥기 식의 얕은 탐구였지만, 우주의 언어로서 수학과 물리는 늘 나름대로의 정답을 제시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해드릴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을 통해, 저는 스스로에게 정답의 완전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1강에서 3강까지 저자는 명료한 논리적 흐름으로 내용을 전개합니다.
기하적 증명을 통해 완성된 <프린키피아> 속 뉴턴의 운동법칙은 물리적인 관찰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고, 이는 수학적인 공리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이후 '공리'로 받아들여졌던 역학 체계는 완전히 흔들리게 됩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 수학 역시 한 차례의 흔들림을 겪게 됩니다. 피타고라스 시대, √2 의 발견은 수 체계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들었고, 기하적 증명이 유행하는 시대적 흐름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기하적 증명 역시, 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체계를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이곤 합니다.
이러한 체계 자체에 대한 의문은 현대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시적 세계를 서술하는 양자역학은 우리의 직관과 반하는 결과를 보이고, 때로는 수학적 계산과도 다른 결과를 만들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물리학과 수학의 체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수학, 물리학, 기하학을 넘나들며 저자는 체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튜링 기계와 알고리즘까지 이어진 이야기가 끝나자, 저는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수학은 일종의 약속 체계가 아닌가?
'다른 학문과 달리 수학은 정답이 도출된다'는 일반적 생각과 다르게, 수학은 일종의 약속을 전제로 하고, 그 약속에 따르면 어떠한 정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전제되는 약속이 다르다면, 정답 역시 다르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는 컴퓨터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컴퓨터는 일종의 계산기로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단순한 계산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계산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컴퓨터의 계산이 맞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계산 역시 약속된 체계 위에서의 계산입니다. 그렇기에 체계가 바뀌거나, 체계 자체를 벗어나는 계산이 이루어지면 그 계산의 신뢰성은 담보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컴퓨터에서 소수점 아래를 표현할 때 이진수의 합을 사용하는데, 이때 이진수의 합으로 표현되지 않는 숫자가 있을 수 있고, 이는 근사값으로 계산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정밀한 계산에서는 오차가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수학으로 돌아와, 수학 역시 하나의 약속된 체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수학을 통해 내린 정답이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며, 근사한 값이거나 혹은 체계 위에서 약속된 값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수학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인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아가 과학적-수학적 지식에 대한 저의 맹목적 신뢰에도 의문을 남겼습니다. 이는 모든 지식이 완전하지 않다는 허무주의적 태도와는 다릅니다. 되려, 수학적 결과가 옳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다른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동기가 되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쩌면 과거에도 과학자들이 이런 가능성을 포용하기 시작하면서 양자역학도 등장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이제 저자는 4강에서 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논리적 사고와 논리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일반적 대화와 문장에서의 도구를 제시하며 4강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가제본된 책을 제공받은 저로서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 미칠 지경입니다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식 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저는 도서관에서 빌린 <수학이 필요한 순간>을 읽고 있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