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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빛을 따라서 ㅣ 아우름 30
엄정순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평점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이 질문을 한다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보는 게 그냥 보는 거지.’라고 일축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하루종일 ‘보면서’ 살아간다. 그런데도,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해 오고 있는 화가가 있다. 엄정순. 그녀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시각장애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한 권의 책을 통해 말한다.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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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안정적이던 대학교수도 그만두고, 맹학교에 찾아들어갔다. 그들이 보는 방식을 이해하고 배우고 싶어서. 거기서 저자는 맹학교의 미술 수업에 참여한다. 맹학교와 미술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 아닌가. 그렇지만 저자는 그곳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그러나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 중에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시력과 시야와 색깔은 다르지만 우리들의 눈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 (41쪽)
이 말이 내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사실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놀라웠고, 그동안 그들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저자는 그들을 데리고 야외수업도 진행했다. 지하철을 타고 차이나타운까지 가서 자유공원 언덕을 걷고 짜장면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긴 여정. 야외수업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약시를 가진 아이들은 비슷하게 재현해 보려 애를 썼고, 사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전맹 학생들조차도 더웠고 다리가 아팠다는 등의 몸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렸다.
저자의 실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저자는 한 동물원에 그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거대한 코끼리를 만져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사람은 무모하다고 하고, 그런 일을 왜 하냐고 했지만,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게 코끼리를 만졌다. 그리고는 그 감각을 갖고 직접 코끼리를 만들어 보았다.
앞이 안 보여서 기존의 코끼리 이미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감각에 충실해서 만든 아이들의 코끼리 작품은 거꾸로 코끼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동시에 ‘시각장애가 시각적 표현을 하는 데 정말 치명적인 결함인가’하고 기존 생각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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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EBS 다큐의 도움으로 태국의 코끼리 캠프도 방문한다. 물론 맹학교 학생들과 함께. 공교롭게도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코끼리들을 돌봐 주는 ENP라는 곳이다. 방문 이후, 아이들의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수업하기가 너무 편해졌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함께한 공통의 경험을 모든 학습 자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여정을 쭉 읽으면서 동화 속 이야기 같았다. 여러 가지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도 돌아보았다. 보는 것. 어쩌면 잘 보이기에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쉽게 지나치고 있는 것들. 그것들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관심을 갖고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본다는 것의 참 의미를 깨닫는 시작 아닐까.
샘터 네이버 공식 포스트 http://post.naver.com/isamt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