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마술사
데이비드 피셔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600여 페이지. 빨간 벽돌 표지의 책. 처음 전쟁 마술사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소화할 수 있을까? 아니, 100페이지라도 읽어낼 수 있을까? 또한 전쟁과 마술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실제 총알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터지는 전장에서 마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마술은 일시적으로 사람의 눈을 속이는 속임수 아닌가.

 

그런 넌센스 속에서 이 소설은 빛을 발한다. 아니,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에 더욱 놀랍다. 첫 장을 펼쳐내기 무섭게 나는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듯

 

10대 자손인 재스퍼 마스켈린은 전쟁 마술사였다. 그에게는 농부 선조의 자손 중에서 가장 힘든 도전이 주어졌는데, 그건 바로 역사상 가장 사악한 적을 상대로 마술의 힘을 겨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전투 끝에 그는 가문의 전설에 가장 이상하고도 중요한 한 페이지를 덧붙이게 될 운명이었다. (14)

 

전쟁 마술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의 실존 인물 재스퍼 마스켈린의 이야기다. 어쩌면 방대하고, 지루한 역사책으로 끝날 수 있는 내용을 소설로 잘 꾸며낸 것은 작가의 공이다. 데이비드 피셔는 22권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를 포함하여 수십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이다. 작가는 마스켈린의 눈부신 활약상을 흥미진진한 사건 위주로 짜임새 있게 엮어 한 편의 근사한 소설을 직조했다.

 

재스퍼 마스켈린은 마술사 집안에서 태어난다.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기교를 가진 그는 제2차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한다. 그런데, 그는 엉뚱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바로 전쟁에 마술 기술을 사용하는 것.

 

역시나 처음엔 다들 그의 생각을 무시한다. 하지만 마스켈린은 계속된 노력으로 위장술 장교에 입대한다. 그리고 교수, 범죄인, 화가, 정규병 등과 함께 소규모 마술단을 구성한다. 조금씩 그의 마술 실력은 인정을 받게 된다. 탱크가 적의 정찰에도 무사통과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가짜 군대를 만들기도 한다. 그의 마술은 정말 기발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는 점차 의식적인 생각의 두꺼운 층을 통과해나가 스스로 소위 아이디어의 공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옮겨갔다. 그 공장에서 재스퍼는 상상력을 지휘해, 해결책이 꽃피게 했다. 거의 기계적으로 그의 지식과 타고난 창의성이 합쳐져 수용 가능한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138)

 

이 책은 1941년 배틀액스 작전부터 42년 라이트풋 작전까지 영국과 독일의 북아프리카 사막 전쟁을 지휘관의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주인공인 재스퍼 마스켈린과 다른 마술단원들의 묘사도 생생하다. 전쟁 용어가 많이 나와 잘 읽히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 현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생생함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다.

 

간만에 소설을 읽으며, 지적인 영역도 만족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좋은 소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특히 전쟁 마술사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가 진행중이며, 헐리우드 탑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그가 연기하는 마술사 마스켈린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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