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무언가 심오해 보이는 제목 케미스트. 은색 표지에 그려져 있는 긴 주사기. 이 책과의 첫만남은 왠지 모를 긴장을 주었다. 의학 소설인가? 아니면, 과학 소설? 분량은 700페이지. 왜 이렇게 두꺼운지...

 

그럼에도 흔쾌히 책장을 연 건 스테프니 메이어라는 작가 때문이었다. <트와일라잇> 라는 걸출한 시리즈를 탄생시킨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우려와 달리 이 소설은 스릴러 소설.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스파이물이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아니라, 케미스트의 주인공은 전직 비밀요원 알렉스. 그녀는 정부의 배신으로 도망자가 되었다. 그녀가 옛 상사의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임무는 100만 명의 사람을 죽일 바이러스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다니엘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오는 것.

 

읽으면서, 과연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옛 상사가 파놓은 함정은 아닐까? 아니면 정말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까? 주인공의 입장에 나를 대입해 계속 머리를 굴려 보았다.

 

특히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흔히 이런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에는 대부분 주인공이 남성이다. 아무래도 격렬한 전투신이나 추격신을 묘사하는 데는 여성보다 남성이 나아 보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여성은 남성의 조력자나 남성이 사랑하는 연인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케미스트>의 알렉스는 달랐다. 남성 이상의 전문 분야를 자랑하기도 하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하는 각종 전략과 기술은 짜릿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또한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는 쪽이 아닌, 사랑을 쟁취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흥미롭다. 최근 변해가는 여성상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한편으로는 스릴러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할 복선과 반전의 요소가 약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물의 심리와 사건 묘사가 워낙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2시간 안에 사건의 기승전결과 인물의 갈등과 해결을 다 보여주는 영화도 좋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 사건을 추리해보고, 경험해 보는 소설을 읽는 경험 역시 근사한 것 같다. 벌써부터 지치는 무더위. 약간 두껍지만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시원한 여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개념 피서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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