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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렇게 발칙한 제목이 어디 있을까.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죽겠다니. 남편인 입장에서 제목을 보자마자 나를 꼭 지목해서 말하는 것만 같다. 고바야시 미키. ‘역시 일본인이니까 이런 제목을 쓸 수 있겠다’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궁금증을 안고.
저자는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아내 14인의 속마음을 취재했다. 워킹맘, 전업주부, 중년 여성 등 범위도 다양하다. 저자는 그녀들의 삶을 되짚으며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비윤리적 희망사항이 아님을 설명한다. 이어 독박 육아 및 독박 가사를 피할 수 없는 일과 가정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물론 실제로 남편을 죽이는 행위와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무엇이 아내들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어쩌면 어느 부부라도 남의 일로 넘길 수 없는 공통된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8쪽)
<육아 휴직이라는 함정>, <경력이 단절된 아내의 한>, <딸의 병으로 시작된 위기>, <아내를 원하는 아내와 원하지 않는 남편> 등 다양한 사례를 이 책은 보여준다. 힘든 육아와 가사, 남편보다 불안정한 일자리 등 아내들은 생각보다 큰 멍에를 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첫아이 출산 후 아내의 취업 변화>, <세대별 여성의 노동력 비율> 등의 그래프는 사회 구조 자체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기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하는 여성 중 60퍼센트가 첫 출산을 계기로 직장을 잃는다 이런 추세는 최근 30년 동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73쪽)
저자는 아내 홀로 아이를 키우기 버려운 현실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남편을 증오하고 혐오하지만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성의 재취업 자리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라 출산 전 연봉을 회복하기 어렵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남성들의 노동 환경 또한 각박한 상황이라 남편에게 충분한 양육비를 기대할 수도 없다. 저자는 배우자에게 크게 실망했다면 과감히 새 출발 할 수 있는 사회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막연히 옆 나라의 이야기겠거니라고 생각했지만, 읽어내려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현재 우리나라의 이야기였고, 범위를 더 좁혀보면, 우리 가정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육아를 시간나면 한번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 아내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내 관점에서만 생각했던 것.... 이런 것들이 아내에게도 쌓여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여성지나 육아 서적을 보면 흔히 ‘남편을 치켜세워서 육아에 협력하게 하자’고 주장하는데, 그 말은 남성이 단순한 바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보다 차라리 젖병을 세척하거나 소독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남편과 해보면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늘려 나가는 방법이 훨씬 좋지 않을까? (227쪽)
아무리 사회제도가 미비하다할지라도 어쩌면, 부부의 문제는 부부 사이에서 풀어야 하는 것 같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삶의 소소한 것부터 서로 지켜가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리라. 안보면 죽을 것 같이 결혼했지만, 서로를 증오하는 씁쓸한 부부 생활이 되지 않기 위해 남편과 아내 모두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