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 하루 일과로 보는 100만 년 시간 여행
그레그 제너 지음, 서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 “이건 무조건 외워야 돼! 시험에 나온다.”는 선생님의 말에 연도를 외우고, 사람 이름과 지명을 외운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머리인데다, 이름들은 왜 이리 어렵고 긴지. 연도는 왜 이리 복잡한지... 이러면서 점점 역사와 멀어져갔다.
‘역사가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고 느낀 건 이 책을 만나서부터였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하루 일과로 보는 100만 년 시간 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100만 년을 어떻게 한 권에 담을 수 있어? 하고 반신반의했지만, 첫 장을 펼친 후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 속으로 빠져 들었다. 저자는 영국의 대중 역사평론가 그레그 제너. 그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캐내어 익살스러운 말투로 들려준다.
우리가 살면서 날마다 순서대로 하는 일상적인 것-침대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 가고 아침을 먹고 몸을 씻고 입을 옷을 고르고 시간을 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시고 이를 닦고 침대에 들어가 자명종을 맞추는 것-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의식처럼 되풀이하면서 굳어진 것이다. (6쪽)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는 우리가 하루 동안에 하는 모든 일의 역사를 세밀히 다룬다. 쉽게 입고 다닐 수 있는 ‘티셔츠’를 예로 들어보자. 티셔츠는 19세기 미국의 수병이 입던 흰색 플란넬 속옷에서 유래했단다. 이처럼 티셔츠는 일반인에게 속옷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만, 할리우드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에 출연한 말론 브랜드가 입게 되면서 티셔츠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패션이 된 것이다.
아침 대용으로 먹는 ‘달걀’에 대해서도 이 책은 할 말이 많다. 로마인은 공작의 알을 좋아했고, 중국인은 재와 소금으로 저장한 비둘기 알을, 고대 그리스인은 메추리알, 페니키아인은 타조알을 좋아했다고 한다. 알의 조리법도 시대와 문화권마다 각양각색이어서 고대 이집트인은 완숙, 프라이, 수플레 등 갖가지 형태로 알을 먹었고 빵에도 넣었단다.
이처럼 책 곳곳에는 우리가 하루 동안에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역사가 담겨 있다. 사우나의 유래, 연회와 향연, 신문의 등장, 포크의 유래, 음주 생활의 시작, 고대의 치과 시술, 물시계 자명종...
이 책을 읽으며,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이 생각났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은 알아두면 쓸 데 있지 않을까. 밥 먹으면서 포크와 젓가락에 대해서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고, 혼술을 마시다가 ‘옛날에도 이렇게 혼술을 했겠지’ 하면서 웃을 수도 있다. 처음 만나는 이성에게도 무언가 있어 보이는 교양미를 장착시켜주기도 한다.
매일 내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들은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만 년 전에 조상들이 똑같이 해왔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어깨를 가졌을 것이고, 어머니는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손이 부르텄을 것이다. 아이들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골칫거리이지만, 결국 잘 이겨내고 성인으로 잘 커갔을 것이다.
책의 한글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어쩌면 이런 소소한 일상이 모여 대단한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리라. 또한, 그 대단한 역사를 잇고 있는 우리가, 내가 대단한 존재 아닐까.
끊임없는 문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는 항상 당신과 나와 같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날마다 생존에 대한 위협을 타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역사 자체는 반복되지 않지만 사람의 삶은 반복된다. (4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