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행복은 간장밥 - 그립고 그리운 법정 스님의 목소리 샘터 필사책 1
법정 지음, 샘터 편집부 엮음, 모노 그림 / 샘터사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매일 쏟아져 나온다. 책의 홍수 속에서 좋은 책을 만나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마치 홍수에 먹을 물이 없는 것처럼. 서점에선 소위 베스트셀러만 취급하고, 광고에서도 이런 책만 다룬다. 이런 현실에선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면 사장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한번 읽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 계속 옆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두세 번 우린 차에서 더 깊은 향이 나듯이 다시 읽었을 때마다 새로운 맛, 깊은 맛을 내는 책 말이다. 책의 옷이라 할 수 있는 표지와 책의 디자인이 예쁘다면, 금상첨화.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책을 만났다. 법정 스님의 행복은 간장밥. 이 책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남기신 말씀과 아껴 읽으신 불교 명언들을 모은 책이다. 1장에는 스님이 이웃들에게 전하는 다정한 위로와 지혜의 말씀, 2장에는 스님 자신의 성찰과 개인적인 소회, 3장에는 글쓰기와 관련한 생각, 4장에는 아끼셨던 경전 구절과 불교 명언을 만날 수 있다.

 

홀로 있으면 비로소 귀가 열립니다.

내 안의 소리, 사물이 소곤대는 소리

때론 세월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듣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곧

내면의 뜰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열린 귀는 들으리라>(24)

 

성철 스님의 말씀은 때로는 잔잔한 시냇물 같기도, 때로는 따끔한 죽비같기도 했다.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의 어느 곳을 펴더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또 있다. 바로 주옥같은 말씀과 명언들을 필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책에서도 많이 말하고 있는 필사. 스님께선 손으로 쓰는 기쁨을 말씀하신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일본 작가는

자기 작품 설국을 붓으로 다시 한 번 쓰곤 했답니다.

사실 원고지에 한 칸 한 칸 글을 쓰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집니다. (81)

 

사실, 이 기쁨을 많이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각종 SNS, 각종 새로운 매체에 뺏겨버리지 않았는가. 눈으로 한 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닌,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보는 것이다. 그럴 때 몇 번이고 더 생각하고, 글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법정 스님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행복은 간장밥을 쭉 훑어 읽어 내려갔다. 옆에 두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무소유로 한국 사회에 많은 울림을 주셨던 스님. 어쩌면 스님이 말씀하시는 행복과 기쁨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많이 가지진 않더라도 주위의 조그만 것들로 자족하는 것. 그것이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한번쯤은 잊고 있던

나와 마주하십시오.

<나그네 길에 서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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