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 코미디언 무어 씨의 문화충돌 라이프
이안 무어 지음, 박상현 옮김 / 남해의봄날 / 2016년 5월
평점 :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시인의 전원생활 분투기? 주인을 지독히도 못살게 구는 동물들의 21세기판 동물농장? 매화 흥미롭고 재미있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난무하는 시트콤은 어떨까? 열이면 열, 독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재미있다’는 것.
정말이냐고? 당장 책장을 펼쳐라.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주인공은 사사건건 주위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안 무어. 사람을 웃기는 데 선수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유행을 좇아 말쑥하게 차려 입는 일명 ‘모드족’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아내의 고향 프랑스 시골로 이사하며,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시작된다.
사람의 진이 빠지도록 일을 저지르는 어린 고양이 세 마리, 성적으로 타락한 스패니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개, 열 살 미만의 남자아이 세 명, 캐스 키드슨과 쿠션에 환장한 여자(163쪽)
이들이 누구냐고? 모드족을 괴롭히고, 흥미진진한 사건을 일으키는 주범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동물 수는 늘어가기만 한다. 총 25챕터 중, 어느 곳을 펼치더라도 배꼽 빠지는 장면이 넘쳐난다. 글은 또 얼마나 맛깔나는지... 누가 코미디언 아니랄까봐.
야생버섯을 따 먹었는데, ‘젖은 스펀지를 먹는 느낌(83쪽)’이 나기도 하고, 물건을 줄이기 위해 참여한 벼룩시장에선 오히려 물건이 늘어나기만 한다. 10여 명의 천둥벌거숭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들 생일파티는 얼마나 실감나는지. 정관절제에 대한 챕터도 키득키득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했다. 툭하면 나오는 동물들과의 한판 승부는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마치 인기절정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코믹 장르만 있는 건 아니다. 사회를 풍자하는 부분도 있다. 몇 개를 소개한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해변 니스를 방문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니스의 그 많은 개들 중에서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개는 없어 보였다. 마치 살아 있는 핸드백 마냥 주인의 팔에 안겨 있었다. 결국 개는 액세서리였다. 살아서 똥을 싸는 액세서리. (89쪽)
피식 쓴웃음이 나왔다. 애완동물을 너무 떠받치고 사는 우리네 모습 아닌가. 이 부분도 보자.
프랑스 아이들은 저녁마다 산더미 같은 숙제를 안고 집에 온다. 프랑스 사람들이 파업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시스템 덕분에 성인이 되면 에너지가 바닥나는 것이다. (155쪽)
촌철살인.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숙제와 성적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엑스레이로 찍어 보인다.

이 책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발견한 건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진부해 보이는 단어 두 개가 결합했다. 가족과 사랑이라니. 요즘 드라마에선 씨알도 안 먹힌다. 최소한 몇 번의 배신과 음모는 있어야 간신히 시청률을 유지하지 않나.
10장 <비행기, 기차, 자동차>를 펼쳐 보자. 일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주인공. 폭설 때문에 영국에서 머무르게 된다. 공연은 취소됐지만, 집에 갈 수 없다. 영국에 있으면서 주인공은 계속 가족에 대한 걱정뿐이다. 폭설에 집은 괜찮은지, 가족들은 건강한지... 알아볼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을 알아본 후에, 비로소 주인공은 집으로 향한다.
이제 한 시간만 있으면 집에 도착한다. 내 아내와 아이들, 개와 고양이, 말들이 여기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있다. 한 시간만 더 가면 폭설에 고립된 우리 집에서 징징대는 아이들과 온갖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구슬들이 기다리고 있다. 눈물이 났다. 피곤한 탓도 있었지만, 행복감이 밀려와서이기도 했다. 드디어 집에 간다. 이 이상 더 행복할 수 있을까. (186쪽)
주인공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주인공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이 장면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코미디언 이안의 팬이 된 것이다.
아, 출판사 소개도 하면 좋을 듯하다. <남해의봄날>. 우리나라 남쪽 끝, 아름다운 통영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에 애정을 갖고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눈다. 그 출판사에서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유럽의 코미디언 에세이를 냈다는 게 의아했다. 세상 어디나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는 똑같고, 그렇기에 공감을 자아내는 게 아닐까?
책 말미에는 저자의 짧은 인터뷰도 수록되었다. <문화권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어디에 가시든 (그 문화에) 자신을 몰입하세요. 먼저 이사한 사람들의 경험을 보면서 안전한 방법을 찾으려 하지 마시고, 온전히 뛰어드세요, (479쪽)
시종 우스꽝스러운 광경의 중심에 있던 코미디언 무어 씨. 국경을 넘어 공연을 다니고, 온전히 농촌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무어 씨가 떠오른다. 책을 읽고 나서 그의 삶과 전원 생활이 부러워진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쯤이면 그의 곁엔 또 어떤 동물이 돌아다니고 있을까?’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한마디로 하자면, 이 책은 책장을 덮어서까지 웃기는 책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