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편지 쓰는 시간 -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배달된 손으로 쓴 편지
니나 상코비치 지음, 박유신 옮김 / 북인더갭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편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아본 적이 아득하다. 이젠 그 자리를 각종 SNS와 이메일이 메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쉽게 소통할 수 있기에 편지의 자리는 더 좁아 보인다. 이제 정성스럽게 편지 쓰는 풍경은 없다. 그런 시대에 여전히 유용한 편지의 가치를 조명한 책이 있다. 혼자 편지 쓰는 시간.

 

마음에 딱 드는 새 집을 계약한 작가는 창고에서 편지다발을 발견한다. 무려 백여 년 전 쓰인 것. 그 편지는 이제 막 대학에 진학한 아들이 어머니에게 보낸 것이었다. 작가는 자식을 키우는 자신의 입장과 너무도 같아 공감한다. 이로 인해 작가는 편지의 힘을 재확인한다. 수년 전 하늘나라로 간 언니가 남긴 편지에서도 언니의 체취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들 피터와 남긴 편지 속에서도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간다.

 

때로는 내가 이 세상에 홀로 정처없이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연결되어 있고, 그 사람들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확신을 주는 것이 편지입니다. (43)

 

 

작가는 동서고금의 100여 통의 편지를 살펴보며, 이 시대 잃어버린 편지의 고유한 의미를 보여준다. 우선, 편지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만의 무언가를 간직한다. 12세기 중반 프랑스의 수녀였던 엘로이즈가 그녀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욕망과 사랑에 가득 찬(57) 표현을 볼 수 있다. 바로 편지는 사적이고 비공개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편지에서는 무엇이든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내보일 수 있었습니다. (57)

 

부모와 자식 간에, 혹은 형제자매간에 조언을 담을 수 있는 것이 또한 편지이다. 작가는 한국의 정약용을 예로 든다. 오랜 세월 적막한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그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1811년 겨울, 그는 터득한 지식을 다른 섬에서 살고 있던 형 정약전과 나누려 했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득한다. 그 섬에서 잡아먹을 수 있는 개고기를 잡아 먹으라고 조언하고, 개고기를 먹는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한다. 편지가 아니라면, 꼭 살아 남으라는 형제의 절절한 조언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을까?

 

즉각적으로 답을 받는 시대에, 작가는 참된 답장의 의미도 가르쳐준다. 작가의 아버지는 독일과 소련의 전쟁을 피해 벨라루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다. 힘든 정착 과정에서도 아버지가 고향을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편지였다. 아버지는 고향으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까지 한두 달을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절대 초조해하지 않았고, 프랑스어나 체스를 배우면서 그 시간을 담담히 견뎌냈다.

 

누군가 나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 우리는 즉각적인 답장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사려 깊고 풍부한 내용이 담긴 답장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기꺼이 기다리고자 하는 답장입니다. (208)

 

책을 읽으며, 수많은 편지와 그 속에 쓰인 갖가지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조언에 나도 수긍했으며, 그들의 위로에 가슴이 먹먹했다. 또한, 그들이 기록한 기쁨과 환희의 순간에는 나 또한 웃음이 지어졌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인간이 갖고 있는 정서는 보편적이기 때문이리라.

 

피터가 특정한 수신인(바로 나!)을 위해서 어떤 사건을 일정한 모습으로 만들고 다듬었다는 것이 바로 편지가 가진 고유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편지는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유일무이합니다. (103)

 

조금 늦고 불편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정성스럽게 잘 전할 수 있는 것이 편지 아닐까. 하루,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SNS를 끄자.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편지지와 펜을 꺼내자. 마음을 표현할 누군가를 생각해 보자. 마지막으로 어색할 지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써 보자. 그 시간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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