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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시 - 한시 학자 6인이 선정한 내 마음에 닿는 한시
장유승 외 지음 / 샘터사 / 2015년 9월
평점 :
시. 지금 시를 읽고 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이미 경영 서적이나 처세 서적이 상위에 올라간 지 오래다. 실생활에 당장 필요할 것 같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딱딱 떨어지고, 휙휙 돌아가는 스마트한 시대에서 시 한 편은 잠깐 쉬어갈 틈을 준다. 그중에서도 한시. 옛 사람들이 읊었던 한시에서도 삶의 여유를 느껴볼 수 있다.
『하루 한시』. 약간 고루해 보이는 한시를 친절하게 소개한 책이다. 한시 학자 6인이 101편의 한시를 선정, 학문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시를, 우리네 일상 속의 언어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장유승, 박동욱, 이은주, 김영죽, 이국진, 손유경 박사는 모두 한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한시의 대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소개로 멀게만 느껴졌던 한시가 바로 내 옆에 친밀하게 다가온 느낌이다. 한 시 몇 편을 읽어 보자.
하늘이 이 아름다운 물건을 남겨두어
더위로 고생하는 사람 조용히 기다렸네 (20쪽)
정약용의 시. 참으로 빠르게 변화한다. 전철과 버스 안에서는, 거리에서는 누구나 다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이런 세상의 흐름 속에서 ‘기다림’이란 것은 얼마나 쓸 데 없는 것인가. 이 시를 소개한 김영죽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 효율성이 극대화된 지금, 기기를 통한 연계는 자연스러워지고, 직접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은 낯설어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신 기기’가 아니라 기다리고 숙시하는 끈기일지도 모른다. (22쪽)
박제가도 한시에서 이렇게 권면한다.
‘붉을 홍’ 한 글자만 가지고
눈에 띄는 온갖 꽃을 말하지 말라
꽃술도 많고 적음 있는 법이니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들 보라 (35쪽)
이렇듯 한시를 쭉 읽다보면, 옛사람들의 지혜와 경륜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시가 주는 가르침이 지금까지도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다.
얘야, 네 아이 키우게 되면
그때야 저절로 알게 되리라 (193쪽)
16세기 문인 이문건이 쓴 글이다. 이 짧은 시만큼 육아를 잘 설명한 글이 어디 있을까? 이 시는 손자의 육아일기 《양아록》에 실린 글로서 할아비의 마음을 손자가 알아줬으면 하는 소망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은주 박사는 이 시를 소개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자식으로서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기를 원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가 어느덧 부모가 되고서야 자신 또한 아이 키우기에 부심하는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된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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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편의 한시. 옛 사람이 썼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구라도 감동과 교훈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좋은 글의 힘인가 보다. 머리말에서 장유승 박사는 이렇게 한시를 논했다.
한시를 고상한 문학작품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한시를 외면하는 대중 사이에서 우리가 할 일을 모색한 결과, 학문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시를 일상의 영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한시는 원래 일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언어로 우리 시대의 일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7쪽)
무더운 여름이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파랗고 높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나 보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흔히 말하는 요즘, 분주한 마음과 바쁜 일정을 잠시 내려놓자. 그리고, 옛사람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에 귀 기울여 보자. 지혜의 보고인 한시를 읽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