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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평점 :
『메이블 이야기』. 이 작품을 무슨 장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참 낯선 책이었다. 한 문장으로, 한 단락으로 정의될 수 없는, 아주 낯설고 지독하고 불편한 책이다. 굳이 한 문장으로 바꾸자면,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참매를 키우는 이야기’ 정도?
우선, 참매를 키우고 길들인다는 것 자체가 생경했다. 참매를 길들이는 풍경도 사뭇 의아했고, 관련된 단어도 낯설었다. 매잡이라는 것도 흔히 볼 수 없지 않은가? 큰 줄거리의 틀 안에서 여러 시점이 혼재해 헷갈린다. 참매를 기르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살펴본 여러 권의 고서적의 이야기도 쉽게 읽히진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조금씩 이 책의 참맛이 느껴졌다.

헬렌 맥도널드.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이다. 그녀는 큰 상실을 경험한다. 바로 그녀의 우상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이다. 사진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 함께 매잡이가 되려는 꿈을 키웠던 헬렌,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충격에 휩싸인다.
물질에, 사랑에, 상실을 멈추어 줄 무엇이든 갈급했고,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움켜잡으려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36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도 실패한다. 그런 그녀에게 어떤 희망이 남아 있을까? 그녀가 선택한 것은 오랜 꿈이었던 야생 참매 길들이기였다.
그때부터 참매는 내게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39쪽)
쉽지만은 않았다. 야생의 존재, 그것도 하늘을 삼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참매를 한 여인의 손으로 길들이는 건 그야말로 넌센스. 먹이를 주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체중을 조절하고, 날 수 있게 하고, 사냥을 하도록 하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헬렌은 평생의 사명처럼 이 일을 해 나간다. 1장 제목인 <인내>처럼 끊임없이 인내하며, 하나하나 해 간다. 때로는 시행착오를 해 가며, 어떨 때는 참매 관련 고서적을 탐독하며, 길들여간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서서히 헬렌은 성장한다.
예전에 매를 날리면서 나는 슬픔에 매몰되었지만 이제 내 슬픔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고요한 숲 장면을 제외하면 모든 게 없어졌다. 나는 이 안으로 큰 혼란과 실상을 놓아 버릴 심산이었다. (277쪽)
그럼에도 슬픔은 헬렌을 완전히 떠나진 않는다. 순간순간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고개를 쳐들기도 했지만, 헬렌은 ‘죽음’이라는, 인생의 대전제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해 간다.
그리고 나도 죽는다는 사실이 날카롭게, 말 없는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래, 나도 죽겠지.’(311쪽)
헬렌이라는 사람에게 닥쳐온 어두운 터널. 그 터널을 힘겹게 빠져 나가도록 도와준 참매. 그것의 이름은 날카롭고, 용맹스러운 참매의 이미지와는 다른 ‘메이블’이었다. ‘죽음’과 최대한 거리가 먼 이름을 택한 헬렌의 마음이 느껴진다. 헬렌은 메이블과 거의 한 몸처럼 생활한다. 메이블이 두려워하면 헬렌이 두려워하고, 메이블이 자유로우면 헬렌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한다.
나는 속으로 중얼댔다. ‘내가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해. 매를 위해서 난 행복해져야 해.’ (244쪽)
다시 한 번 이 책의 장르를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한 여성의 성장과 성숙을 다룬 자전적 소설? 치밀하게 참매와 자연을 묘사한 에세이? 참매를 길들이는 방법을 설명한 실용서? 하지만, 읽다 보면, 장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메이블 이야기는 헬렌이라는 한 상처 입은 여인의 이야기다. 메이블을 길들이면서 성숙하는.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헬렌의 이야기만은 아니란 말이다. 많이 거절당하고, 실패를 수없이 경험한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상처 입은 헬렌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겹쳤다. 울부짖고 고통스러웠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했다. 그녀가 메이블을 길들이며, 순간순간 용기를 내고, 상처를 딛는 모습은 내게도 굳은 마음을 주었다. 오래도록 내 지침이 될 것이다.
극심한 슬픔과 낙심 속에서 주어진 시간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또 그 속에서 ‘사랑’과 ‘돌봄’을 끊임없이 베푸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결국은 선택해야 할 한 가지일 것이다. 메이블 이야기는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이다. 앞으로도 계속 쓰일 나만의 메이블 이야기, 어떤 빛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