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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순례하다 - 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 이야기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지음, 이정환 옮김, 이경훈 감수 / 푸른숲 / 2015년 6월
평점 :
창(窓). ‘공기나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벽이나 지붕에 낸 문.’ 창의 사전적 정의이다. 창은 우리 주위에 늘 있다. 단잠을 자는 방에서부터 일하는 일터 등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에서 창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는 창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많지 않을까.
여기, 창에 대한 책이 있다. 거의 창에 대한 모든 것이다. 《창을 순례하다》. 창을 순례한다니? 그것도 한 나라, 한 지역이 아닌 무려 세계 28개국이다. 집을 순례하고 살펴본다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건 창이다. 거의 네모난 모양에 유리가 끼어 있는. 이 무모한 순례를 시도한 것은 역시 디테일에 강한 일본인이다. 도쿄 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의 쓰카모토 요시하루, 곤노치에, 노사쿠 후미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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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반신반의하며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창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라는 나의 기우는 금세 사라졌다. 세계 각국, 각 지역의 다채로운 창! 그 창이 주는 매력과 냄새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 창마다 첨부된 칼라 사진과 그림은 시각적인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본이나 중국, 영국, 미국 같은 친숙한 곳부터 미지의 무언가가 숨쉬고 있을 것 같은 터키와 스리랑카, 인도를 거쳐, 이름도 낯선 슬로베니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까지. 각국의 창을 보며, 실제 그 지역을 방문한 듯한 느낌이다.
그뿐인가. 기후와 생활 습관, 삶의 양식에 따라 위치와 모양, 크기를 달리 하는 각양각색의 창들. 그 창을 하나하나 보며, 인간의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창의 숙명을 가늠해 본다. 그리고, 각 창 안 쪽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을 잠잠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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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은 기후와 풍토, 사회적·종교적 규범, 건물의 용도 등 그 장소가 요구하는 조건에 대해 매우 실천적으로 응답하는 동시에, 그곳에 한데 어울려 있는 다양한 요소의 섭리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을 부여한다. 우리는 그 상상력 안에서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세계와 일체화되는 듯한 시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28쪽)
이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이와 같지 않을까. 수천 년 발달해 온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온 집, 그중에서도 창을 통해 각 민족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엿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고생했을 일본의 세 교수와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강의실에서만의 교육이 아닌, 직접 그 지역을 밟고 보고 익혀 간 ‘참교육’도 부러웠다. 그 교육이 결국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피어나지 않았나.
‘창문은 라이프스타일이다’. 책 뒷면에 적힌 카피다. ‘삶의 모습과 도시의 문화를 결정짓는 창문의 모든 것’이라는 글도 써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창을 보았다. 그리고, 창을 통해 사람을 보았다. 창문 안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의 숨결이 아직까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