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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 수업론 :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 ㅣ 아우름 5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4월
평점 :
수업(受業). ‘기술이나 학업의 가르침을 받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뜻이다. 이 수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빽빽이 놓인 책상, 사지선다형 문제로 가득 찬 시험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비슷한 커리큘럼. 여러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것들은 다시 ‘수동적이다’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약간은 모순 있는 제목으로 수업을 논하는 책이 있다. 바로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교육가인 ‘우치다 타츠루’이다. 그는 지난 2011년 무도와 철학을 수업하기 위한 도장 ‘개풍관’을 여는 등, 일생동안 수업의 참 의미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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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적(敵)’의 의미를 살핀다. 넓은 의미에서 적은 ‘내 심신의 성과를 저하시키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완벽한 상태의 자신을 ‘표준적인 나’로 설정하고, 지금의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적에 의한 부정적인 간섭의 결과’로 설명한다(40쪽)고 말한다. 즉, 인과론적인 사고가 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은 심신의 모드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것이 적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약함’과 ‘무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인간은 잘 몰라서 무지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사를 잘 알고 있어도 지금 자신이 채용한 정보처리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몸소 나서서 무지해집니다. 자신의 지적 틀을 바꾸도록 요구해 오는 정보의 입력을 거부하는 아집이 바로 무지라 불리는 것이지요. (85쪽)
이 부분을 읽고, 무지의 개념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잘 모르는 것이 무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새로운 환경이나 정보에 놓일 때, 얼마나 내가 무지를 선택했었는지 돌아보았다. 또, 이 책에서는 ‘명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우리는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자기성찰 상태에 든 사람을 떠올린다. 저자는 그 이미지에 더해 ‘액자’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우리가 적절히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그때마다 세계 인식에 가장 적절한 액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123쪽)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어 늘 ‘액자는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출발점에 둬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명상의 덕으로 ‘타자와의 동화’를 이야기한다. 타자에 포함되는 것은 인간 뿐 아니라, 자연현상, 기계의 움직임도 포함한다.
이 책의 원제는 <수업론>이다. 분량은 적지만, 쉽게 읽히진 않았다. 철학적인 내용도 섞여 있고, 무도의 단어와 표현도 섞여 있어서 그랬으리라. 하지만, 한번 읽고 내팽길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해 본다면, 그때,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참된 수업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