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라 - 샘터와 함께하는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재순 지음 / 샘터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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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숙성된 글을 읽고 싶다면

<천천히 서둘러라(김재순 / 샘터)>를 읽고

 

대형서점, 그달의 잡지들이 쭉 널려 있는 코너에서 잡지 뒷면을 자세히 본 적 있는가? 대개 잡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내용과 함께, 화려한 앞면인 경우가 많다. 뒷면은 광고나 간단한 잡지 홍보문구로 고정되기 마련. 그렇기에 잡지 뒷면을 살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뒷면을 찬찬히 살펴보아야 하는 잡지가 있다. 바로 <샘터>.

 

43년간 샘터 뒷면에는 뒤표지글이 실린다. 그 달에 맞는, 그 당시 정세를 담은 다양하고도 정갈한 글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한 사람이 쭉 써 왔다는 것. 바로 샘터의 창간자 우암 김재순 선생의 솜씨다.

 

 

 

김재순 선생의 뒤표지글을 모은 책이 이번에 샘터에서 출간되었다. 천천히 서둘러라.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천천히서두르다는 결코 같이 쓸 수 없는 단어 아닌가. 쭉 읽어가다 보면,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제목의 의미를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빼곡히 담긴 주옥같은 65편의 글, 이 글들은 한 번에 쉽게 읽어 내려갈 수도 있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곱씹어 가면서 되새김질해야만 하는 깊이 숙성된 종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천히 읽어야 하고, 서둘러 읽어야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깊이 묵상해 봄직한 이라 할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점차 짧고, 경박해진 글이 생산되기 쉽다. 그 속에서 김재순 선생의 글은 한두 번 읽을 때와 나중에 다시 읽어볼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는, 더 깊어지는 맛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진해지는 장맛으로 굳이 비교를 할 수 있겠다. 명문(名文)을 몇 문장 살펴보자.

 

-어린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애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좋은 말, 좋은 버릇을 익히게 해야 한다. p.35

 

-젊음은 아름답지만, 젊음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조용히 감수하는 것, 이런 태도가 인간을 강하게 만듭니다. p.73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 p.92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게으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리라. p.94

 

-어린이의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이쪽저쪽으로 쉽게 방향이 달라진다. p.212

 

 

김재순 선생은 이외에도 위인들의 명언을 군데군데 잘 인용했다. 그 명언으로 인해 글이 더욱 풍성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를 기리며>, <철의 여인 서거>, <새 대통령 탄생에 부쳐> 등 국내외의 주요 뉴스의 단상을 기록한 글들도 눈에 뜨인다. 이런 글은 자체로 역사가 되어 나중에 후손들이 뉴스를 바라볼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은 단초들이 될 것이다.

 

43년 전, 첫 뒤표지글을 정성스럽게 썼을 김재순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글이 40여 년 이어져 이렇게 아름다운 모음집이 탄생되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뜬 눈으로 현실(現實)을 보고, 감은 눈으로는 이상(理想)을 보라.” 월간 <샘터> 창간 때 장리욱 박사가 김재순 선생에게 준 글월이란다. 이 글을 평생 간직했던 김재순 선생의 통찰력 있는 글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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