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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을 읽었다. 시간을 멈춘다고? 황당한 이야기가 TV와 인터넷에 넘쳐나는 이 때, 이 책은 별로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 대충의 줄거리를 보니, 늙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로 많은 인기를 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나기도 한다. 별 기대감이 없이 책장을 넘겼다.

주인공 톰 해저드는 평범한 40대 초반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성장 속도가 보통 사람보다 15배나 느린 희귀한 신체 조건 탓에 수세기를 넘게 생존해 왔다. 그는 1581년에 태어났고, 여전히 살아 있다. 하지만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그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톰은 현재 영국의 한 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작가는 톰의 이력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셰익스피어가 활약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1900년대 초의 파리, 찰리 채플린이 살던 뉴욕, 남태평양의 섬에 이르기까지 톰이 경험했던 시대상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하다.
늙지 않기 때문에 고통이 없을 것 같은 톰.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사랑했던 아내를 먼저 보내야만 했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딸과 헤어져 그녀를 평생 찾아다니고 있다. 그뿐 아니라 보통 인간이 갖는 철학적인 난제를 그도 갖고 있다.
지금 내 머릿속은 인간의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앞으로 미래가 얼마나 남았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불안으로 차오른다. (74쪽)
어쩌면 그의 고민은 우스워보일 지도 모른다. 수백 년 동안 사는 사람이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아내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수많은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보았기에 어쩌면 더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또한 톰이 어머니를 잃었을 때의 아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설렘, 딸을 찾기 위한 간절함 등을 나도 따라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섬세한 필력의 힘이리라.
팽팽히 전개되던 내용이 후반부에 가서는 약간 아쉽게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내용이 나를 사로잡았다. 인간으로서 겪는 숙명과 고민 등을 주인공의 삶을 통해 느낄 수도 있었다.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한다. 주연은 무려 〈셜록〉, 〈닥터 스트레인지〉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영화로 보는 톰의 일생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시각적으로 완벽히 구현될 중세 유럽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간만에 『시간을 멈추는 법』을 통해 소설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