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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ㅣ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어를 배우면서도 러시아문학과는 그리 친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한 3개월 전쯤부터 한 권씩 차근차근 읽어보고 있다. 그러던 중 이반 투르게네프가 러시아 내에서는 대문호로 여겨지면서도 러시아 외부에서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에 비해 평가절하된 작가라는 말을 접하곤 그의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여러 소설들 중 표지가 가장 아름다운 펭귄클래식의 <첫사랑>을 골랐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꿈꿨으나 말 그대로 첫사랑의 매운맛 이야기로 가득했다. 충격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러시아 문학에서 풋풋한 첫사랑을 기대한 내가 잘못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 또 재미가 있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첫사랑>은 150쪽도 되지 않는 짧은 소설로, 마흔이 넘은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의 "나의 첫사랑은 전혀 평범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가 자신의 첫사랑을 회상하며 쓴 노트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833년 16살의 여름, 모스크바의 부모님 댁 바로 옆집에 이사 온 자세키나 공작부인과 그녀의 딸 지나이다가 이사를 온다. 강단 있는 성격을 가진 아름다운 연상의 여인 지나이다의 웃음을 보는 순간 블라디미르는 사랑에 빠진다. 블라디미르를 비롯한 몇몇 남성들은 지나이다와 사랑놀음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블라디미르는 질투, 감동, 슬픔, 모욕감, 황홀한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을 어떠한 식으로 묘사하기도 어려워 이 첫사랑의 감정 자체가 지나이다라고 정의하는 블라디미르의 모습에서 사랑에 빠져 그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사실 지나이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의 연인을 죽여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 결심한 블라디미르 앞에는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여주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채찍질하고 잠자리를 가지는 자신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열렬히 사랑하며 웃으며 받아들이는 사랑하는 지나이다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런 폭풍우 같은 일들이 지나간 뒤 블라디미르는 첫사랑의 돌풍을 뒤로 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와 지나이다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첫사랑'이라는 제목 아래 이런 소설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소설이다. 그 내용과 표현은 아주 충격적이었지만, 그 충격 덕에 감정의 노예가 된 인간이 어떠한 행동까지 할 수 있는지, 특히나 가학적인 것까지 수용하게 만드는 사랑의 성질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16살 블라디미르가 처음 가졌던 순수한 첫사랑이 어떤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들이 또 어떤 사건과 또다른 감정으로 이어지는지 목격하는 재미가 톡톡했다. 이 소설 자체가 저자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를 그린 소설이라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저자는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라 설명하며 이 소설에서 그리고자 한 것이 비단 첫사랑의 혼란, 외도 등이 아니라 사랑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것임을 시사한다. 나 역시나 소설을 저자의 삶과 연결지어 어떠한 답을 찾는 것보다는 소설 그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정말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게 하는 열정적인 소설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