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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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간 전부터 기대했다.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이 일곱 작가 중 반 이상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터였고, 잘 모르는 작가들도 이번 출간 소식을 일찍이 접한 터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에세이 연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학기 중이어서 너무 바빴고, 또 매주 짧은 글을 읽는 것보단 단숨에 많은 흐름을 타는 것을 선호하는 터라 이 책의 출간이 꽤나 반갑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며 반 이상을 읽었고, 또 그 날 밤 집에 와서 침대에서 뒹굴대며 남은 반을 읽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마음에 드는 글을 몇 번 찾아 읽었다.

책은 총 63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아홉 개의 주제 아래 7명의 작가는 각자의 색채를 담은 짧은 에세이를 종이에 담았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쓸데없는, 각각의 주제를 각자들 한 명씩 돌아가며 정했다고 한다. 작가가 7명이나 되다 보니 어쩌다 보면 글의 흐름이나 세부 주제가 조금 겹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읽다 보니 작가들 각자의 온도, 습도, 높이의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비슷한 느낌의 글도 물론 있었지만,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확연히 그 작가만의 색이 보였다. 워낙 다양한 글이 담긴 책이라 전체를 담아내는 리뷰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 각 작가별로 가장 좋았던 에세이를 하나씩 뽑았다. 우연찮게도 다 다른 주제에서 뽑혀서 신기한데, 이것도 각 작가가 담아내는 방식이나 느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김혼비 작가의 글은 매력적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흡인력이 대단하다. 한참 고민하다 김혼비 작가의 글 중에는 <잠자는 동안 고양이는>이라는 글을 최고로 꼽았다. 주변에서 김혼비 작가의 팬은 많이 봤지만 나는 그녀의 글을 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데, 그래서인지 처음 읽은 <잠자는 동안 고양이는>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따. 가장 무서운 고양이에 대한 글이지만 결국은 그녀의 ‘묘’한 잠과 그녀가 만난 ‘어른’에 대한 글이라는 이중적인 사실이, 그리고 그 과정 속 눈에 띄는 그녀의 문장들이 정말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 했다.

문보영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그녀가 계속 사용하는 ‘뇌이쉬르마른’이라는 이름이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지다가 점점 그에 몰입하며 읽게 되었다. 낯설었던 그녀의 글이 이 책 한 권을 통해 친근한 글이 되었다. <슬픈 사기꾼>이라는 글이, 이 책을 통틀어 그녀의 작품으로 가장 기억에 크게 남는다. 뇌이쉬르마른은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녀를 이용하는 자였던 ‘피 흘리는 마음’과 우연히 ‘피 흘리는 마음’을 따라 가 만난 ‘벗’. 처음엔 어린 아이가 오십 대의 보모에게 너무 의지한 나머지 친구라 여기는 상황에 집중했다가, 마지막에 동년배의 ‘벗’이 실제로 등장하며 생기는 그 괴리가 내겐 다소 충격적이었다.

정지우 작가의 <방에 있는>은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하며 읽은 글이다. 그가 글에 쓴 것처럼 나 또한 집단생활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좋았던 순간, 그리운 순간을 떠올리면 항상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 ‘방’이라는 주제 아래 정지우 작가는 희망하는 방, 원하는 방의 상태에 대해 서술한다. 여동생과 함께 있었던 방에서 시작해 나에겐 항상 선만을 베푸는, 나에게 따스한 ‘내 편’과 함께 있는 방에 대한 희망을 담은 글이 마치 나의 마음 같아서 따스하게 느껴졌다. 부디 비슷한 감정을 느낀 사람들 모두 원하는 방에서 살게 되길. 


남궁인 작가는 그의 유쾌함으로 익히 들었다. 책의 초반에서도 짧은 작가의 말로 그의 특이한 유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정한 뿌팟퐁커리와 그 주제 아래 쓴 그의 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단순한 경험담일 뿐인데도 굉장하고 엄청나게 느껴졌다. 다른 작가들은 뿌팟퐁커리라는 주제 아래 에세이를 쓰던 중 종종 이 주제를 고른 남궁인 작가에 대해 짧게 언급하곤 하는데, 남궁인 작가는 오로지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퐁 그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두고 그의 본과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에세이가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남아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김민섭 작가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로 알게 된 작가인데, 에세이를 이렇게나 잘 쓸지 몰랐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통틀어 김민섭 작가의 글이 가장 좋았다. 읽다보면 작가를 신경쓰지 않고 줄줄 읽게 되는데, ‘아 좋다’ 싶으면 대부분 김민섭 작가였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내겐 그랬다.) 내겐 <너와 같이 우산이 쓰고 싶었어>가 참 아련해서 좋았다. 작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비가 부의 상징일 수도, 혹은 ‘너와 함께라면 함께 우산을 쓰고 비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도 있어!’와 같은 달달한 배경이 될 수도 있음을 한 에세이를 통해 표현한 것이 내겐 신기하면서도 감탄스러워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다음에 또 그의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면 기꺼이 책을 사 읽을 것 같다.

이은정 작가의 <마실 수 없는 커피>는 그녀의 언니에서 더 넓은 삶으로 뻗어가는이야기다. 항상 비싼 커피를 들이키던 언니가 더이상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고, 당신의 어머니께선 비싼 커피를 사마시라며 돈을 쥐어주시는 모습을 아침에 커피를 들이키는 저자의 모습이 뒤따른다. 결국 커피 한 잔을 들이키는 것은 그 날을 버티기 위한 것이 아닌지, 커피 한 잔을 마심으로써 감내할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저자의 물음에 나 또한 습관적으로 들이키던 커피잔들을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커피 한 잔, 하루의 무게, 오늘도 버텨보자, 이런 단어들의 나열이 참 애틋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오은 작가의 <난데없이 쓸데없이>다. 사실 쓸데없는 것에 대한 글들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겹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짙게 들었는데, 오은 작가의 난데없음과 쓸데없음에 대한 글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시인으로서 받은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결국 삶의 중요한 지점에는 난데없음과 쓸데없음이 있었다고 쓰는 그의 문장이 어쩐지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다른 글들보다 조금 짧은 편인데도, 더 강한 임팩트를 가진 글이었다. 난데없음, 쓸데없음, 나 또한 항상 생각해볼 조합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일곱 편의 글을 꼽았지만, 63편의 글들에 비하면 정말 부족한 리뷰다.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이라면 내가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글에서도 매력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의 팬이라면 이 책을 통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9편이나 읽을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나는 일곱 작가들과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새 작가의 글을 만나는 느낌이기도 했고, 또 기대하지 못했던 주제에서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하는 소중한 ‘발굴’과도 같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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