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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고재욱 지음, 박정은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동안 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로 책 표지가 너무 아름답다. 노오란 꽃밭에 서있는 할머니의 미소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둘째로 계속 읽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주변에 치매에 걸린 노인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지, 그들에 대한 이미지가 마냥 좋진 않았다.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어린이 같이 떼쓰는 모습의 노인들이 그들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의 눈엔 불쌍하거나 불쾌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노인의 모습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또 인생의 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부분이 참 좋았다. 조부모님 생각도 나고,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세상의 한 단면을 아름다운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것 같아 다정하게 느껴졌다.

요즘 즐겨보는 웹툰 중에 <회춘>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에서 사람은 50-60대까지 늙으면 다시 청장년기, 유야기를 보내고 가장 어린 상태로 죽게 된다. 내용을 막론하고 설정 자체에서 늙을수록 어려지는 사람을 교묘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책 속 노인들의 모습은 <회춘> 속 어려진 인물들의 모습과 겹친다.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며 사달라고 떼쓰는 모습, 대소변을 잘 가래지 못하는 모습,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는 모습. 어른들이 하면 ‘꼴 사나운’ 모습일 수도 있는 행동들이 치매 노인들에게는 얼마나 당연한지, 또 그 모습들 속에 그들의 삶의 단면이 어떻게 녹아있는지 저자는 계속해서 보여준다. 20년 전 사별한 남편을 ‘사랑 못’이라며 담고 살아가는 할머니, 실명에 가까운 눈으로 매일 산책하며 소설을 쓰는 할아버지,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할머니, 그리고 당신의 죽음이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라 예상한 할아버지 등 수십 명의 이야기 속 담긴 그들의 삶은 어떨지 골똘히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저자는 치매 노인들에게서 공통된 특성을 하나 찾았다. 바로 오래된 습관, 특성 등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할머니는 양양에 사는 모친을 찾고, 또다른 할머니는 이미 쉰 살이 넘은 막내딸을 치매에 걸려 다른 기억들이 흐릿한 순간에도 아픈 손가락이라며 안타까워 하신다. 많은 것을 품고 다시 어려진 그들의 모습은 애처롭다. 개인적으로 “엄마한테 가요”라는 문장이 가장 아프게 와닿았다. 5살 아이가 “엄마한테 가요”라고 말한다면 엄마를 찾는 것이 귀엽게 보일 수도 있고, 혹은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나 싶어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87세 할머니가 말하는 “엄마한테 가요”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어머님께서 살아계실까?’부터 ‘어머님의 죽음을 인지하고 계실까?’ 등등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노인이 주는, 특히 치매 노인이 주는 감정은 내 생각보다 복잡하고 큰 응어리였다.

개인적으로 저자에게 매우 감사한 책이다. 중간에 저자도 언급했듯, 요양사나 외부인들은 신입 요양사에게 ‘괴팍한 노인이나 안 만나게 조심해!’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의 말이나 태도에서 노인에 대한 공경을 찾긴 쉽지 않다. 물론 저자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되려 그들을 짐처럼 여기고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내가 처음에 갖고 있었던 부정적 이미지도 그런 사람들에게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 아주 오래 살며 자신의 삶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준 저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