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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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적 영어학원에 항상 30분 정도 일찍 달려간 이유는 책장에 꽂힌 그리스로마신화를 읽기 위해서였다. 금발의 제우스, 빨간 머리의 헤라, 푸른 머리의 포세이돈을 보는 것이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낙이였다. 그런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두꺼운 벽돌책이 되어 나의 책장으로 들어왔다.

제 1권은 세계의 탄생부터 올림푸스 판테온의 성립과 여러 신들의 탄생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우리 추억 속에 있는 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저자는 각 신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떠올리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라 권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읽으니 내 머릿속 신화가 더 탄탄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 세월을 상징하는 크로노스가 그와 대지모신인 레아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을 삼킨 것은 세월이 땅에서 태어나는 것들을 잡아먹는 자연의 섭리를 상징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원리들을 고대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신화화를 통해 엿보는 것은 즐겁다.  

2장은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사랑 이야기, 즉 치정극에 대한 이야기다. 신화에서 사랑은 주로 무언가의 탄생의 이류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다. 테이레시아스의 이야기를 예로 들 수 있다. 남성으로 태어난 테리아시아스는 사랑을 나누던 뱀을 때린 뒤 여성이 되어 7년을 살았고, 같은 방법으로 다시 남성으로 돌아온다. 마침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갑론을박하던 제우스와 헤라는 그에게 사랑으로 득을 보는 것이 누구인지 질문했고, 그는 제우스의 편을 들며 여성이 사랑의 득을 본다고 주장한다. 이에 화가 난 헤라는 테리아시아스를 장님으로 만들고 제우스는 그를 안타까워하며 그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을 준다. 이게 우리가 아는 점술사의 탄생의 이유다. 절름발이 대장장이, 장님 점술사 등에 대한 이미지가 신화로 설명되는 것이 너무나 기발하고 재밌었다.

3권에선 신들이 좋아하는 인간 유형과 싫어하는 인간 유형이 나온다. 신들은 그들을 상징하는 가치를 향유하는 자를 좋아한다. 애욕에 빠지지 않고 지혜를 선택한 벨로로폰이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페가소스의 황금 고삐를 받은 것처럼, 신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유하는 자에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려준다. 신들이 인격신으로 글졔기에 그들을 인간의 잣대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의 합당함을 신들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4권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 다음으로 가장 유명하다고도 할 수 있는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 헤라클라스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는 저자의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독자들이 헤라클레스에 대해 더 알아간 뒤 유럽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지식 없는 상태에서 보는 헤라클레스 동상은 돌덩어리일 뿐이니까. 나는 헤라클레스 이야기를 읽으며 ‘헤라클레스적인’이라는 형용사에 대해 생각했다. 헤라클레스의 삶을 담은 4권은 ‘엄청난’보다 더 엄청난 것들의 연속이다. 다 쓰기 힘들 정도다. 부디 관심 있는 사람은 4권을 꼼꼼히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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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5권. 개인적으로 5권은 다른 권들보다 저자의 시각이 돋보인 권이라 생각한다. 작고하시기 전 마지막 권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저자는 모든 인물, 사물에 이유를 붙인다. 고대인들이 처음 부여했던 의미를 되새기며 의미를 부여한다. 날아가는 참새도 그에겐 엄청난 의미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나는 이처럼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고 소중히 여기는 저자의 시각을 빌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었음에 매우 감사하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 머릿속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미지는 알록달록한 머리의 신들뿐이었을 것이다. 신화라는 자전거를 꽤 오래 탔다. 한 달에 걸쳐 읽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한 길을 더해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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