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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 - 넘어져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법
캐런 리날디 지음, 박여진 옮김 / 갤리온 / 2020년 5월
평점 :

서점에 자기계발서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내 손으로 직접 골라 읽는 일이 잘 없는데, 내 눈엔 항상 대단한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신기하게도 저자가 자신이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에 대해 쓴 것처럼 보였다. 들어가는 말부터 바로 ‘못하는 일이 없다는 건 망상’이라고 주장한다. 첫장부터 이토록 이례적인 주장들이 가득하니 계속 안 읽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첫장에 적혀있는 ‘내가 이 즐거움을 잘 아는 이유는 서핑을 하기 때문이다’라는 의심스러운 문장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분명 편집자가 쓴 책이라고 했는데 서핑은 무슨 관계일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과소평가하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쓸 수 있었을까에 대한 물음표들이 가득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핑’은 어떤 이미지의 단어일까? 매체의 영향이겠지만, 나는 ‘서핑’이라고 하면 무릎 조금 위로 오는 반바지 같은 수영복을 입은 근육질의 남성이 멋지게 파도를 타는 모습, 온 몸을 가리는 래쉬가드를 입은 말랐지만 근육이 탄탄한 여성이 패들링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 머릿속 서핑이란 운동을 잘하고 근육질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능력을 조금씩 과시하며 즐기는 스포츠다. 하지만 저자는 꽤 늦은 나이에, 우리가 흔히 ‘아줌마’라고 부르는 나이에 서핑을 시작했다. 여전히 서핑을 잘 타진 못한다. 하지만 즐긴다. 잘하지 못하는데 즐길 줄 아는 저자의 모습이 내겐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잘하지 못하면 속상해하고, 또 하는 걸 꺼리게 된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못하면 괜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게 되고, 또 내가 하는 만큼의 성과가 없으면 나쁜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된다.
저자는 서핑하다가 사타구니 쪽이 찢어져 수술을 해도, 유방암에 걸려 항암치료 때문에 중간에 서핑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다시 서핑할 날을 꿈꾼다. 그리고 회복한 뒤엔 바다로 떠난다.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또 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내게 색다른 영감을 주었다. 못하면 어떻고, 못해서 속상하고 주변의 눈이 신경 쓰이면 어떠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인데.

중간중간 저자의 색다른 시도도 눈에 띈다. 잘 모르는 중개인을 철썩같이 믿고 해외의 땅을 산다거나 하는 등, 그녀의 가족도, 독자인 나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그녀는 때때로 시도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다. 참 멋진 삶의 태도다. 이 책은 다른 자기계발서처럼 ‘—해라!’라고 권유하기 보단 자신의 경험들을 공유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런 삶도 있으니, 당신 또한 원하는 대로 살아가길 조심스럽게 권하는 느낌이다. 이런 형태의 삶도 있구나, 새삼 놀랐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