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 융합시대의 과학문화
홍성욱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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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와 이과의 만남, 문이과통합,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 등의 주제는 살아오며 끊임없이 접한 주제다. 실제로 현재 고등학교에선 문이과 구분 없이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실로 이상한 점은 대학에선 둘 사이의 융합적 움직임을 목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취미로 인문학을 부전공하는 공대생, 취업을 위해 공대, 경영대를 복수전공하는 인문사회대생은 많이 봤다. 하지만 실제로 둘을 융합해 연구하는 이는 극히 적다. 빅데이터나 통계를 사용하는 인문학자, 머신러닝의 데이터로 문학을 사용하는 공학자 정도가 내가 교내에서 들어본 사례의 전부다. 통합을 지향하기엔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어쩌면 이건 모두 헛된 바람 아닐까?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데 괜히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은 인문학, 예술, 건축, 언어, 젠더, 법, 인권, 박물관과 과학의 관계를 다루며 과학을 문화적, 역사적으로 접근한다.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 접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12년 전 나온 책이기에 훨씬 이전부터 저자가 연구하고 집필한 내용이라 예상되는데, 그 때부터 이런 다른 학문들 사이의 만남이 이야기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그 만남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젠더, 법, 인권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생경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책을 완독한 뒤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이 책에 서론에서 밝힌 대로 ‘과학이 무엇과 필연적으로 만나야 한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태 일어난 만남과 변화들을 정리하고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주목해 더 나은 만남을 위한 방향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학문의 종류를 막론하고, 아주 다른 두 학문의 만남에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따른다. 책 속 인권 문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편하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범위는 늘어났고, 그 범위는 아직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시험관시술, 초음파 검사, 제왕절개 수술, 인큐베이터와 각종 약물을 사용한 조산아 치료 등이 불가능했던 옛날엔 이미 태어난 아기부터 생명,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임신 3주차 정도부터 임신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신체가 잘 생겨나고 있는지, 장애가 예상되지 않는지 등을 임신 중에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우리 아기 잘생겼네’라고 말하는 예비 부모님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혹여나 일찍 출산하더라도 기술의 발전 덕에 인큐베이터 속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음파 사진을 보며 이미 아이에게 애착이 생겨버린 부모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를 한 명의 인간으로 여기고 있고, 일부 집단은 눈코입이 생기기 전이라도 낙태하는 것은 인권 유린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범위가 늘어났음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그 범위를 규정하고, 그에 맞는 법을 개정하는 역할은 누구의 몫인가? 과학을 발전시킨 과학자, 공학자의 몫인가? 그렇지 않다. 그를 담당하는 자들은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과학의 발전에 따라 학문 간의 상호 작용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문이과 통합 사례를 실제로 목격하지 못 했다고 해도,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선 통합, 연결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신약 개발, 인공지능의 발전, IoT의 보편화를 비롯한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와 동시에 그 변화를 따라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 당하는 인간의 모습은 장난스럽게 이야기되곤 하지만, 실제로 학자들은 인간의 발달 과정을 잘 아는 인문학자를 불러 만약의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학문 간 만남은 우리 생활 속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의 최초 발행일은 2008년이다. 현재 본인이 읽은 책 또한 2008년 1쇄본이다. 그렇다면 약 12년이 지나 이 책을 읽은 셈인데, 10년이 지나 읽어도 유의미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난 12년간 양질의 발전이 있었긴 하나, 저자의 문화로서의 과학 접근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게다가 우리는 이전 과학을 이어나가는 세대다. 우리는 2008년 저자가 책을 집필한 시점으로부터 현재까지 어떤 가감이 있었는지 알기에, 이 책을 바탕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다. 잦은 변화를 겪는 과학 분야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해 한 권으로 정리한 유의미한 연구서다.

첨. 2017년 개정판을 읽으면 현대 흐름까지 살필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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