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도다 준코는 이미 일본에서는 유명한 작가이지만, 한국에선 이번 《눈의 소철나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가다. 내가 아주 놀란 것은 도다 준코가 여성 작가라는 사실이다. 일문학을 더러 접했지만, 내가 읽은 모든 일본 문학은 남성 작가의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괜히 두근거렸다. 편견이 작용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일본 여성 작가는 어떤 글을 쓸지 참 궁금했다. 참고로 도다 준코는 육아 중 38세의 나이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너무 늦었다고 말할 나이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 이토록 흥미로운 것을 창조하다니, 존경스럽다.

책은 마사유키와 료헤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3년의 시간을 료헤이를 돌보며 자신을 희생한 조경사 마사유키와 마냥 좋아했던 마사유키 삼촌의 비밀을 알게 되며 점점 변해가는 료헤이의 관계를 살피며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포스트를 보는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자세한 줄거리는 적지 않겠지만, 기존의 일본 추리소설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일본 추리소설은 아주 섬세하게 짜여서 읽으면 즐겁지만, 그 형식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오래 유지되다 보니 읽으면 다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일본 추리소설의 섬세함에 색다른 소재를 더함으로써 독자를 끌어당긴다.

나는 주로 마사유키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으려 했다. 마사유키는 머리가 새치로 인해 이미 하얗게 변해버린 30대 청년이다. 나는 예전에 중국에서 화제였던 눈송이 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에게 이입했다. 사진처럼 눈을 뚫고 학교에 가느라 머리가 눈송이처럼 변해버린 아이였는데, 왜인지 모르게 마사유키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 결핍된 인물이다. 난봉꾼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가 사랑 받지 못하고 자라왔다고 생각하는 마사유키, 부모님 없이 자랐지만 결국 모두에게 속고 있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료헤이, 마사유키를 사랑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불행해진 마사유키의 아버지, 바이올린만을 보고 살아왔지만 재능이 없었던 이쿠야, 이쿠야에 묻혀 시녀처럼 살아온 마이코 등 모두가 자신만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처음엔 료헤이의 할머니 후미에나 몇몇 인물의 말이나 행동이 거칠고 비상식적이라 여겨지기도 했는데, 읽다 보면 다 이해하게 된다. 아픔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고, 아픔을 지닌 사람은 더 아픔에 약할 수 밖에 없구나 싶었다.

처음엔 바보 같게만 여겨졌던 마사유키와 철부지 어린애처럼 여겨졌던 료헤이가 7월 7일이 다가옴에 따라 변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엄마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도다 준코의 소설을 한 번만 읽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번역이 훌륭해서 더 좋았다. 직역할 것인지, 의역할 것인지는 각자 옮기는 사람의 자유이지만, 흐름과 정확한 감정 파악이 중요한 소설에 훌륭한 번역이 따라서 술술 읽혔다. 도다 준코의 다른 책이 나온다면 꼭 한 번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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