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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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대단히 유명한 일본 작가인데 우리나라에 유독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약 4년 전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이 작가를 처음 알았다. 당시 왜 논란이 생겼는지 궁금해 그의 단편소설 ‘우국’을 찾아 읽은 기억이 있다. 번역된지 워낙 오래되어 일본어만큼이나 어려운 한글로 이루어진 글이었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었다. 그 기억을 되짚으며 이번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금각사》를 읽었다. 이틀 간 저녁시간을 할애해 읽었는데, 이번에도 문장에 감탄하며 읽었다.

개인적으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선정이 참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서점에 가면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외 일본 작가의 소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상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이 서가를 점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는 일본 소설가들이 매우 적음을 서점에 갈 때마다 느낀다.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해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오에 겐자부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으로 구성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은 독자들에게 일문학을 접할 기회를 주는 참 소중한 기획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명작들 중 알짜배기로 꼭 읽어야 할 것들만 모아둔 느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마음》, 《인간실격》, 《금각사》 모두 재미있게 읽어서 다른 소설들도 모두 읽고 싶다.


‘나(미조구치)’는 미(美)에 흠뻑 빠진 말더듬이 소년이다. 그의 성격과 외모는 실제 금각사 방화범인 하야시 쇼켄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금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금각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 그리고 그 환상은 ‘나’ 점점 금각과 아름다움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못생기고 말을 더듬는 ‘나’가 아름다운 우이코와 맺어질 수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미는 자신이 아무리 탐닉하려 해도 가질 수 없는, 자신에게 수치심만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나’는 여러 사건들을 거치며 그런 미의 형상인 금각사에 불을 지르기에 이른다.


나’는 대학에서 가시와기라는 친구를 만나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와 어울리며 끊임없이 여성과 접촉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가 여성의 복부를 발로 밟거나 할 때는 ‘나’는 만족감, 우월감 등의 감정을 느끼지만, ‘나’가 여성을 가지려고 할 때는 금각이 그의 눈 앞에 나타나 자꾸만 방해한다. ‘그가 금각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파괴적인 방법 뿐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금각, 미가 미조구치에게는 자기규제와 같았다고 생각한다. 성장시절 그가 못생겨서, 말더듬이라서 겪은 부조리함과 그가 금각에 대해 가진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관련된 환상이 이와 같은 자기규제를 만들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자기규제의 결말은 십분 파멸적이었다.

소설은 ‘나’가 담배를 물고 ‘살아야지’라 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작가는 몇 년 뒤 할복해 자살한다. (미시마 유키오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치적 신조가 많이 반영된 사건이긴 하나, 작가가 미조구치의 말을 빌려 ‘살아야지’라는 대사를 쓸 때와 자신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의 마음은 아주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역자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력이 워낙 탁월하기 때문에 의역하지 않고 최대한 직역하려 노력했다 한다. 이런 역자의 사려깊음 덕에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들에 매 페이지 감탄하며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위 사진과 같이 몇몇 페이지는 문체나 내용이 너무 좋아 접어놓았다. 작품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시점에서도 이렇게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데, 나중에 다시 읽어 이해도가 높아졌을 때 읽으면 어떨지 정말 기대된다. 다음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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