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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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인 퍼트리샤 월트셔의 직업을 무엇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책을 다 읽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책의 표지엔 식물학자라고 적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화분학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분학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그 분야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적거나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사전적 정의가 존재하는 단어들만을 조합한다면 책의 저자가 '법의학계에서 화분학을 사용하는 식물학자 겸 고고학자'라고 저자를 소개할 것이고, 책의 단어들을 빌리자면 화분학자나 법의생태학자라고 소개하고 싶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이 저자의 직업은 물론이고 '화분학'과 '법의생태학' 자체가 무엇인지 잘 모를 것이다. 잘 몰라서 그런지 더 잘 읽힌 것도 있고, 또 이 책이 단순한 사건의 나열보다는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묘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소설 같은 회고록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것들로 무엇을 알아낸다는 거죠?" 나의 질문이기도 하고, 경찰관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건넨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경찰들은 다들 지문이나 발자국, DNA, 목격자, 용의자 등에 집중했는데 저자는 달랐다. 발견된 물품, 차량 등에서 채취한 여러 먼지, 흙, 꽃가루(수분)로 "사체는 오솔길에서 조금 벗어난 텅 빈 구덩이에 있을 거예요. 자작나무 가지로 뒤덮여 있겠죠." 식의 추론을 한다. 아무래도 난 이 분야에 대해 아예 무지하다 보니 초반엔 이 정도로 정확한 추측이 가능한가 의문스럽다가도 실제로 그 곳에서 사체를 찾았다는 기록을 보며 저자가 어쩌면 학자를 넘어서 초자연적인 어떠한 능력을 가진 자가 아닐까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분석하고 상상하는지, 그녀의 전문성에 대해 감탄하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도 저자를 비롯한 누군가는 어떠한 가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중간중간 소설 같이 느껴지는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남편과의 이혼, 할머니의 사고사, 아이의 투병과 같은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 동일한 분야를 공부하는 다른 학자와의 교류 등을 아주 자세하진 않아도 담담하고 흥미롭게 전개한다. 너무 세세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그렇다고 그 양이 너무 적지도 않아서 사건 일지들 속에 숨겨진 부록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냉정하다고 말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어내려간 독자의 입장에서 그녀는 단단해진 사람이지, 결고 냉정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해 더 치열하게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것들에 파고든다.


이제 저자는 일흔이 넘은 노학자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를 누비며 연구, 강연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저자가 강간, 살인, 은닉을 비롯한 많은 사건들에 개입해 억울한 이의 누명을 벗겨주기도,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거나 자백하게 만들기도 하는 스스로의 매혹적인 모습을 회고한 이 책은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선한 영향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용성과 동떨어졌다고 여겨지는 인문학, 자연과학을 진득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일대기는 하나의 신화가 될 수도 있고, 하나의 꿈이 될 수도 있다. 아직 많은 분야를 접해보지 않은 누군가에겐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기에, 이 책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화분학자', '법의생태학자'의 삶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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