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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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르트는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상가 겸 철학자다. 기호학, 신화학, 문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서 이름을 떨친 그의 책이기에 어려울까봐 걱정되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그가 어떻게 애도, 상실, 슬픔을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이 책은 바르트가 출판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다. 바르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다음 날부터 노트를 사분할한 크기의 쪽지에 글들을 쓰고 모으기 시작했다. 어떤 날엔 연필로, 또 어떤 날엔 펜으로 쓰기도 했고, 어느 날은 한 문장으로 쪽지가 끝났지만, 다른 날엔 하루에만 쪽지가 두세 장이 나오거나 한 장의 내용이 한없이 길어지기도 했다. 《애도일기》는 약 8개월 간의 쪽지들의 모음이고, 그 이후의 쪽지들은 ‘후속 일기’와 ‘이후에 쓴 일기’, ‘날짜 없이 남아 있는 단장들’, ‘마망에 대한 몇 개의 메모’로 정리되어 수록되었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 바르트의 어머니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고, 또 그 어느 하나 그녀와 직결된 것도 없다.


바르트의 ‘애도일기’들은 대체적으로 짧은 편이다. 그래서 처음엔 수월하게 읽힌다는 착각이 든다. ‘결국 바르트 역시 극적인 좌절의 순간엔 아주 엄청난 글을 쓰지는 못했구나’라는 착각의 문장을 다 떠올리기도 전에 수없이 많은 단상이 떠올랐다. 그는 한 단어 한 단어를 헛되게 쓰지 않았다. 애도, 우울, 병, 삶, 죽음, 마망, 번역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운 이 단어들이 《애도일기》를 참 어렵게 만드면서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아래 글이 나에게 그랬다.


‘애도는, 우울은, 병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낫게 하려는 걸까? 어떤 상태로, 어떤 삶으로 나를 데려가려는 걸까?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런 존재는 더는 아니다.’(《애도일기》 p.18)


《애도일기》를 읽다 보면 빙빙 도는 느낌이 든다. 바르트가 계속해서 행복과 슬픔이라는 반대되는 것만 같은 두 감정을 혼재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무거운 마음’ 안에서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그의 슬픔의 원인을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 외로움에서 찾지 않고 모자 간의 사랑이 가장 뜨거웠던 그 지점에서 찾는다. 이해가 되는 듯 하다가 또 갑자기 그 슬픔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답을 내리지 못한다. 역자 또한 슬픔을 번역할 수 없는 단어로 꼽았다. deuil을 애도로 번역하듯, 바르트의 모든 단어들은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만 그의 단어들은 너무 격렬하고 깊어서 책 속 단어들과 관련된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리고 내가 느낀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의 또다른 원인은 어머니를 잃은 아들로서의 바르트에게서 오는 혼란스러움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존경 받는 대표 현대 사상가라고 하더라도, 어머니 앞에서 한 명의 아들이었던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유사한 흐름의 일기들을 반복한다. 며칠에 걸려 다른 내용으로 흘러간 쪽지가, 또 며칠 지나면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다. 번역할 수 없는 ‘사상가 바르트’의 단어들과 가늠하기 힘든 ‘아들 바르트’의 감정이 이 책을 더 어렵고 찡하게 만든다. 


단언컨대 스무 페이지도 안 되는 역자의 해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역자의 도움을 받은 지금도 책을온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바르트의 세계는 너무 심오하고, 그의 언어 하나하나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상상보다 더 큰 것이 들어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역자는 아주 친절하게도 프로이트, 프루스트의 이론과 사례와 비교하며 바르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왜 그의 슬픔이 ‘나만의 고유한 슬픔’, ‘완전히 새로운 슬픔’인지, 왜 그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일 수도 있는지에 대한 역자의 해설과 식견 덕에 나는 이전보다 수월하게 책을 이해하고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바르트는 어렵다. 그의 슬픔과 애도 과정을 살짝 훔쳐본 것일 뿐인데도 마음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다시 읽고 싶다.번역 불가능하고 무뎌질 것 같지도 않는 그의 슬픔이 공부를 조금 더 하면,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차차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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