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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책방에서 쨍한 노란빛의 책이 왔다. 가운데 모자 덕에 남미권 소설이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남미 소설을 아예 읽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쉽게 접하기 어려워서 잔뜩 긴장한 채 읽었다. 스페인어를 조금 배워서 그런지 읽는데 큰 무리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문화권에서 볼 수 없는 단어들과 번역이 조금 낯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배경과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첫 100장 정도를 무사히 읽으니 나머지 400여 쪽은 마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흡입력이 굉장한 책이다.

이 책의 키워드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죽음, 생일, 가족, 사랑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네 가지 키워드만으로 이 책 전체를 설명할 수 있으며, 또 이 네가지 단어들이 이루는 상황이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을 웃고 울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주요 상황은 죽음과 생일이다.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빅엔젤의 70번째 생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빅엔젤의 100세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 한평생 자신의 아내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일 때문에 빅엔젤은 어머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죽음으로 생긴 분노와 상실감과 함께 죽음을 앞둔 빅엔젤의 상처 받은 마음은 다른 가족들의 상처와 이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화해하며 끝내 빅엔젤의 마지막 생일파티에서 그는 원하던 대로의 죽음을 맞이했다. 참 슬픈데 또 유쾌하고 재밌다. 빅엔젤의 가족이 그렇듯 모든 가족이 마냥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에 대해 화를 낼 때도 있고, 분노의 마음을 삭힐 때도 있다.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미워해도 결국 가족들은 우리를 위해 옆에서 도와준다. 툴툴거리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빅엔젤의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족의 모습이 참 훈훈하고 유쾌하게 그려졌는데 그 상황 때문인지 읽으면서 눈물이 종종 고였다.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 중 하나다. 이 책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조금은 거칠다고 느껴지는 말들을 주로 사용하고, 또 그 생활도 마냥 도덕적이진 않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가족과 삶에 대한 사랑과 애절함이 너무 간절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책을 처음 폈을 때만 해도 나와 전혀 관련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헀었는데, 점점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나의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고 자꾸 가족 생각이 나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 소설 중 빅엔젤이 기도 겸 감사하는 일들을 기록하는 부분이 종종 나온다. 처음엔 ‘망고’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쓰다가 어느 날 ‘오늘’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 순간 잠시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죽음을 앞둔 상황이기에 매일을 소중히 하고 싶어할 것임은 분명 예상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 ‘오늘’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뭐랄까, 정말 그가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가 보내온 시간들의 종점이 보이는 것 같아 슬프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멍해졌다.
소설이 작가의 삶과 아주 긴밀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그의 삶에서 만난 상황과 말들이 이 책의 상황과 말들이 되었다. 어느 종류의 작품이든 만든 사람의 삶과 너무 긴밀하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때 창작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창작자와 너무 가까운 이야기는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 소설의 많은 사건들이 작가의 실제 상황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아주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발견해 묘한 감정이 생겼다. 한 편으로는 이 책의 대단한 흡입력의 근원이 그의 삶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혹여나 그가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생겼다. 부디 내가 빅엔젤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많이 웃고 운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즐기되 돌은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족함을 짚어내더라도 그 말이 작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미 그의 삶을 공유한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이자 독자에겐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