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죽음 이야기

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ㅣ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예일대학교에서 졸업하기 전 꼭 들어야 하는 명강의가 있다면 셸리 케이건 교수님의 DEATH 강의라고 한다. 꼭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아 수업을 하시고, 매년 많은 학생들이 그의 수업에서 죽음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고 한다. 그런 강의를 책으로, 그것도 국문으로 읽을 수 있다니,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를 보면 굉장히 형이상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쉽게 단언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종교적 해석은 전혀 없고 각기 다른 철학, 심리, 과학 실험 등을 근거로 죽음과 삶에 대해 설명해준다. 내가 이 책을 읽느라 손에 쥐고 있는 동안 동기 한 명과 룸메이트가 이 책이 정말 과학적이고 이성적이어서 좋았다는 말을 건넸다. 사실 나는 그들의 추천을 듣고 굉장히 놀랐는데, 한 명은 모태 기독인이고 다른 한 명은 신화와 관련된 내용을 주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사변적 사고를 더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이유로 죽음과 삶에 대한 책을 추천해주다니, 그들의 추천 덕에 이 책을 더 꼼꼼하고 열심히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덕에 시간은 더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좋은 책을 오래 읽는 건 좋은 일이니까.

사실 누구에게나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저자는 여러 이론과 실험, 사례를 나열하며 설명하는데 독자들이 그 내용 전부를 알리는 없다. 대부분 흐름만 잘 따라가면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었긴 하지만, 여전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박탈이론 등이 다루기 쉬운 주제는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추천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며칠 잡고 길고 진득하게 읽으면 좋은 책 같다. 하지만 반대로 재미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부드럽게 내용을 풀어가는 경우도 많으니 그리 긴장하고 읽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뇌가 육체의 핵심이고 영혼을 담고 있는 부분일 것이라 생각하고 산다는 것을 익살스런 예시들로 명쾌하게 풀어나가니, 과연 명강이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마지막 단원에서는 자살을 다루며, 자살이 도덕적이지 않은 이유와 자살이 도덕적일 수도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두 가지의 다른 입장이 있다면 각각의 상황을 제시한 뒤 독자가 각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자살에 반대하는 사람도 왜 누군가에겐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저자 또한 자살에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다른 입장에 서봄으로써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다. 보통 책의 내용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으며 책과 다른 의견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책은 여러 가능성을 다 제시하니 사람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해볼 기회를 줌과 동시에 그 어느 의견도 틀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