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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 순수 저항 비판
조지 A. 던 외 지음, 윌리엄 어윈 엮음, 이석연 옮김 / 한문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
인기 소설 헝거게임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주인공인 캣니스가 경험하는 모든 일련의 행동들을
철학으로 논해보는 교양서이다.
국가가 강제하는 시스템에 갇혀 통제받는 삶을 살고 서로를 위해하며 생존을 겨룬다.. 이거 소설속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게임 제작자들에게 이건 대중오락의 완결판이야' 소설에서 피타 멜라크가 이야기한다. 몇년전 미국 월가의 오만이 떠오르는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무리를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며 구경하던 월가의 기득권자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헝거게임은 저급한 예술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통제 수단이 된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광기를 더욱더 표출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선으로 활용될수 있는 예술이 악을 향유하는 자에게는 악의 도구로써 사용될수도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롭고 좋은 사회를 상상하는데, 그곳을 '이상사회'라고 부르기로 하자, 소크라테스는 이상사회에서 여러 음악과 악기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크라테스는 음악이 무해한 오락이며, 캣니스도 마찬가지였다.]
기득권자들은 그들의 만족을 충족하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인것을 찾기 마련이다. 얼마전 별장 성접대 사건을 기억하는가?
서민들에게는 통제된 사회를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어두운 곳에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온갖 추악한 짓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라고 말할수 있을까? 위선의 가면으로 자신을 가린 '체' 하는 저급한 족속일뿐이다.
책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신념을 캣니스에 투영하여 삶이 죽음보다 나쁠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소크라테스와 캣니스를 동일시 한것이다.
그리고 칸트의 표현으로 캣니스의 행동을 풀어 나가고 있다.
'옳은 일을 하겠다는 내적 결단의 선의지'
판엠에서 벌어지는 생존게임을 오락으로 풀어낸 비합당한 세상을 보고 이외에도 철학자들의 논조를 빌려 설명하고 또 비판하고 있는 이책을 통해 사회가 시민을 통제하는 상황이 과연 옳은 가 하는 사유를 독자로 부터 끌어 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통제하는 사회 좁게 보면 서로가 서로를 밟고 일어서는 경쟁사회우리는 지금껏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를 통해 우리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권력에 동의하는 홉스의 '사회계약'에 의문을 표할수도 있고
칸트의 '평등사회'를 환영할수도 있다.
정치가에게는 약한 제재를 가하면서 연예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시청자와 마찬가지인 캐피톨 시민들은 헝거게임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비난한다. 마치 연예인과도 같은 참가자들은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장치에서 고통을 받지만 그에 대한 댓가도 얻는다. 정작 그들은 모른다. 그들이 밀어내야 압제는 시민들도 아니요
참가자들도 아닌 보이지 않는 '그분'들임을.. 한국 사회에서 흑과 백 / 보수와 진보 / 경상도와 전라도 / 남과 여가진자와 못가진자가 서로를 비난하고 싸우는 게 아닌 화합하여 '그분들'에게 대항하여야 한다. 우리끼리 싸우고 도태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누구일까?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과 다른 세상을 느끼고 싶고 생각해 보고 싶다면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