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은 화가 난 장소에서 피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의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고 한다. 한 가지 팁을 더 주자면 천천히걸어서 나오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달려서 잽싸게 도망쳐 나오는 것이다. 우리 뇌는 몸을 움직이는 동작을 더 적극적인 의지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걷는 시간은 3분이면 충분하다. 단 3분이라도 다른 장소에 머물다 보면 ‘저 사람은 항상 왜 나를 화나게 만드는가?‘에서 ‘내가 왜 화를 내고 있지?‘로 경계선이 그어진다.
사실 걷다 보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감정은 정돈되고 논리는연결되며 생각은 차분해진다. 예부터 심리학에서는 걷는 행위를 일컬어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대철학 중에서는 ‘소요학파‘라고 하여 도심 속을 그저 천천히 산책하는 행동을 곧 철학과 연결시키는 학파도 있었다. - P93
익명으로 존재할 때의 편안함으로 찾아간 가게에서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혹은 "늘 같은 걸 드시네요."와 같은 친절한 인사를 받았을 때 꽤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정겨움이 아니라 불편함이었다.
그래서일까. 도시에서 자취를 하는 젊은 남녀들은 편의점에서 생필품을 소비하면서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내가 생리대를 사든 콘돔을 사든 무관심하게 바코드만 찍어 주는점원이 있을 때 가능하다. 몇 살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친절한 주인장이 있다면 불편함을 넘어 소름 돋는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 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