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시는 시인의 삶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하루하루인생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시는 시를 쓴 사람의 삶을 뛰어넘을 수 없고 인생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산 시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느낌이며 생각들을 시라고 하는 아주 짧고도 명료한 문장 형태로 남겼습니다. 후세를 위한 아름다운 선물이지요.
그 시들을 읽으며 후세 사람들은 인생을 배웁니다. 거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느낌을 다스립니다. 스스로 좋은 인생을 꿈꾸고 미래에 대한 암시를 받습니다.
특히 그건 나에게 그러했습니다. 시를 읽기 시작한 소년 시절 이래, 시에서 배우고 느끼고 빚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는 나의 스승이고 시인은 고마운 동행입니다. - P4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 P16

가끔 나는 문학 강좌 같은 데에 가서, 처음 시를 쓰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게 이렇게 권하기도 한다. 시를 어렵게 쓰려고 하지 마라. 잘 쓰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마라. 싸우듯이 써라. 유언을 남기듯 써라. 지나고 보니 조금 섬뜩한 느낌이 없지 않다. 특히 기형도 시인의 이런 시를 읽고 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이 시는 유언 같은 시다. 자기의 생에 대해서 전반적으로부정하고 의문하면서 끝내 사랑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부정을 한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자기에 대한 사랑이온갖 사랑의 근본임을 뼈아프게 깨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발언이다. 역시 시인은 앞서서 갔다. - P17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 P24

다시

희망찬 사람은
그 사람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사람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 P33

선물 받은 날

춘삼월 초아흐레
볕 밝은 대낮에
홀연히 내게
한 천사를 보내셨다

청 드린 적 없음에도
하늘은
곱고 앙징스런
아기천사 하나를

탐낸 적 없음에도
거저 선물로 주시며

이제
너는 어머니라

세상에서 제일로
복된 이름도
함께 얹어주셨다.


유안진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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