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의 빛 - 어둠을 넘어서는 희망의 빛
루이지 마리아 에피코코 지음, 김희정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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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질문에 대해서 루이지 마리아 에피코코 신부님 답해주시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목차는 이렇습니다.

관계(저는 소중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고독(사랑하는 사람이 저를 떠난다는 두려움,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침묵(침묵이 그 자체로 아름다우리라고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육체(살면서 제 육체를 지금만큼 생생하게 인지한 적은 없었습니다)

죽음(죽음이 남긴 상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책에서 와닿은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관계

코로나 바이러스가 비인간적인 이유는 인간의 육체를 공격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성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나눌 수 없도록 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고통이 불행과 좌절, 체념으로 치닫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

과학자나 의료진들은 전문적인 능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면서도 인류애를 실현하려고 한다. 단순히 육체만 돌보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과학으로 채울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까지도 이루려 한다 .이것이 그들이 고통과 질병과 위험에 맞서려 하는 이유다.

고독

현명한 자세는 이 고독의 현실에 눈을 뜨는 것이며, 고독을 경험하는 일에도 좋은 것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는 것ㅇ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존재가 깊이 관여된 관계의 회로에서 분리됙 제외되고 버려져서 혼자 남겨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존재의 신비 앞에서 철저하게 혼자다. 이는 부정적인 고독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삶의 신비 앞에서 유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속감을 통해 건강한 방식으로 삶의 신비에 들 수 있다.

우리가 판단하여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자유를 발견하고 누려야 한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져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피해자에서 주인공으로 말이다. 마음의 자세를 바꾸어서 끊임없이 울고 싶고, 틀어박히고 싶고, 옳지 않은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고, 어두운 기운을 표출하고 싶고, 남에게 화풀이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버렁진 상황에서도 책임감을 느끼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는 피해자에서 벗어나 삶의 주도권을 쥐는 이가 되도록 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위해 고독의 시간과 상황을 선택하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고독을 강요하는 현실에서도 자유를 행사해야 한다. 그러고는 그 현실을 피해자가 되는 부당함을 딛고 주인공이 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고독은 관계의 부재가 아니라, 긍정적인 고독은 우리의 깊은 내면에 있는 관계를 깨닫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에서 고독의 시간은 현실이 덮거나 지우려 하는 각자의 정체성을 되돌려줄 수 있다.

우리가 고독에 빠져들 때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한계와 나약함을 딛고 풍성한 수확의 가능성을 위해 시도하라고, 깊은 곳으로 가라고 끊임없이 권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말을 신뢰하고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면 고독은 고립이 아니라 은총이 된다.

침묵

침묵은 우리가 내면에서 살도록 이끄는 문의 역할을 한다.

사실 침묵이 필요한 것은 그것이 지닌 우리 삶의 이야기와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엄청난 능력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내면이 수용적인 태도를 취할 때, 즉 자신의 이성과 사고와 관게를 능가하는 더 큰 무언가를 환대할 때 삶의 올바른 차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면에 있는 것들고 친숙해지려면 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내 안에 있는 '군중'의 얼굴과 이름과 상황을 알아 가야 한다. 이러한 환대의 태도를 취해야 군중의 폭력적인 힘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의미 있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관계 안에서 선의 가치를 높이고, 무엇보다 먼저 선을 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가 부정적인 비판의 시선이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때 변화와 혁신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니 악이 아닌 선을 신뢰해야 한다. 냉정한 심판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자비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가면이 벗겨져도 지속되는 사람과 만나면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진정한 친밀감이 샘솟는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에 대한 미움의 감정도 떨칠 수 있다.

침묵은 우리를 내면으로 인도하고, 그 안에 있는 것을 파악하도록 한다. 그리고 '비판'하는 적을 물리치게 할 뿐안 아니라 위대한 경청의 자세로 이끌고 내적 자유의 문을 통과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존재가 폭력의 힘을 이기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 온유한 삶을 살게 해 준다.

육체

때때로 육체는 정신과 마음의 충동을 가라앉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육체와 내면은 이론적으로만 분리되고 현실에서는 항상 하나로 작용한다..

내면성이란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인 관계도 고려되어야 한다. 관게그 그 자체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관게를 통해 정보의 교환뿐만 아니라 서로의 경험도 교류한다. 이런 의미에서 몸은 관계가 일어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죽음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은 사실이지 논쟁의 주제가 아니다. 사실은 반드시 논쟁보다 앞서기 때문에 사실 앞에서 모든 추론은 중지된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설득력 있는 추론이 없는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한 사실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려면 진정한 애도가 필요하다.

진정한 애도는 망각이 아니라 예언이다 .죽음의 힘이 사랑을 앗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죽음보다 강하다.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이 절망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해야 진정한 애도의 가능성이 열린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은 현재를 더 잘 살게 하는 동기이지, 삶을 포기하는 이유가 아니다.

에필로그

어둠 속에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다.

우리는 일상생활과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야곱이 끝까지 놓지 않았듯이, 염원을 이루지 않고서 대결을 끝낼 수 없다. 우리의 삶에 깊이 새겨진 어둠과 악과 투쟁하고 험난한 상황 속에서 축복받고 선을 발견해야 한다.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것이 모두가 찾아야 할 '깊은 곳의 빛'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는 시련의 경험에서 축복을 차아야 한다. 우리를 불안케 하고 의문을 품게 하는 것에 숨겨진 선함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저주와 대립, 패배를 경험했던 것에서 축복을 받아야 한다.

어려운 시기가 지ㅏ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힘든 시기와 그 흔적은 어둠을 거치면서 끌어낸 축복과 선함의 표식이 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전추에서 승리할 무기가 없지만, 힘없이 쓰러져 더는 일어설 힘이 없다고 느낄 때도 게속 싸울 수 있다. 우리 안에는 기르고 드러내고 사용하고 알아야 할 힘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깊은 곳의 빛'은 더욱 밝게 빛난다.

*가톨릭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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