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신 출판사의 소설, 향 시리즈가 새로 나왔다!
'돼지우리'라는 소설로 등단하여 이름을 알린 김엄지 작가의 겨울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 향 시리즈는 장편보다 짧고 단편보다 긴, 중편 소설 시리즈이다. 너무 짧아서 아쉽지도 않고, 너무 길어서 부담스럽지도 않은 딱 적당한 책이어서 매번 즐겁게 읽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겨울장면'을 읽다 보니 왠지 피카소의 그림이 떠올랐다.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혹은 그 무엇도 제대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 소설 속에서 계속되었다. 마치 한 편의 추상화를 보는 것처럼 이 책은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겨울장면'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소설의 형태를, 전개를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R과 그의 아내, 그리고 기타 잡스러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R은 어떤 사고를 겪은 이후 기억에 혼란을 느낀다. R은 과거에 있다가도, 어느 순간 현재에 와 있고, 그러다가 또 과거의 한 장면에서 현재를 살고 있다. 책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R의 행보를 보여주다가 끝이 난다. 결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한 편의 현대미술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