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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ㅣ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평점 :
실패한 삶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주인공 이섭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숨이 막힌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령의 시간'이라는 제목처럼 그는 유령처럼 부유하는 삶을 산다.
주인공 이섭은 평생을 노력해왔던 일들이, 그의 꿈은 모조리 좌절된다.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단지 시대가 그의 편이 아닐 뿐이다. 내가 이섭이라고 상상해봤다. 내가 부족하다면, 어떻게해서든지 노력을 할 텐데, 시대가 억누르고 있으니 삶이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유령처럼 부유하면서도,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솔직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형체는 있으나 실체가 불분명한 그의 삶을 가족들에게도 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책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섭의 불완전한 삶이 타인의 삶과 만났을 때에는 의미 있는 삶의 한 조각이 된다. 자식에게나, 부인에게나, 동네 사람들에게나. 그의 삶은 실패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의 존재는 타인의 삶에서는 위로였고 희망이었다.
내 삶을 어떤 순간에도 폄하해서는 안된다. 내 삶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실패한 삶은 절대 아니다. 삶의 가치는 성공과 실패와는 상관없다. 이섭이 타인들에게 의미가 있었던 순간은 그가 성공해서가 아니라, 그가 따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