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숍앤센터
설재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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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의 대한민국은 ‘웨일홀’이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발명한다. 이는 ‘수구’만 있다면 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운, 지극히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부작용이 존재했다. 웨일홀을 이용할 경우 1%의 확률로 신체 기관 중 하나가 탈락하는 것이었다. 분명 치명적인 부작용이었지만 압도적인 편리함에 사람들은 이용을 멈추지 않았고, 그만큼 탈락한 신체 기관도 나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넘쳐나는 잉여 신체 기관의 처리가 어려워질 무렵, 한 박사가 새로운 제안을 한다. 버려지는 신체 기관들을 활용해 새로운 종족을 만든 뒤 반려동물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상에는 탈락한 신체 기관을 조합해 만든 ‘프랑’이 탄생한다.

프랑은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개와 고양이가 멸종한 세상에서 그들을 대신하면서도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반려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여러 신체 기관을 조합해 프랑을 만들었고, 쓰임을 다한 프랑은 가차 없이 유기했다.

아마 인간들은 자신이 프랑을 만들고 키우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사랑이라기보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로 보였다. 인간과 닮은 존재를 소유하고, 원하는 만큼 곁에 둘 수 있는 일. 그 속에서 그들은 우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존재다. 그럼에도 인간은 일말에 죄책감도 없이 프랑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결국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은 프랑이 인간에게 저항하기 시작하면서 그 관계는 역전된다. 약자가 자신이 겪는 부당함에 의문을 던지는 순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세상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여러 이유로 반려동물을 입양한 뒤, 여러 핑계를 대며 그들을 유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렇듯 작가는 프랑이라는 기괴한 존재를 통해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작품에서 인간들이 프랑에게 행하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이러한 장면에서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은 미리 유의하길 바란다. 그럼에도 이러한 불편함 자체가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프랑에게 지배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을 그저 단순한 소유물로 바라본 인간의 오만한 때문은 아닐까. 때때로 우리가 생명을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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