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꿈들 -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양미래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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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꿈들>1994년도에 출간된 책으로 20년도 더 지나 2022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소개됐다. 이 책은 솔닛이 네바다주 핵실험장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란 두 장소를 통해 환경 문제와 자연과의 공생에 대해 고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닛은 서문에서 네바다 핵실험장은 글쓰기를,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희망을 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썼다. 글을 따라가면서 저자가 말한 그대로 두 장소를 통해 그가 받아들이고 깨우친 가르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새삼 놀라웠다. 그의 말처럼 죽음의 장소는 새로운 것을 낳는 풍경이기도 했다.

 

1부에서는 핵실험장을 통해 국가 안보라는 목적으로 핵을 사용한다면 인간의 삶의 터전인 지구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네바다 핵실험장은 길에서 자주 접해 알고 있지만 명칭만으로는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정확히 모르는 간판 같은 단어의 조합이었다. 네바다주는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로, 핵실험장은 영화 힐즈 아이즈나 인디아나 존스3편의 장면들로 기억했다.

 

히로시마나 체르노빌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 되었고, 후쿠시마의 재난은 솔직히 말하자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방사능 낙진이란 단어가 갖는 위력은 벌거벗은 세계사나 세계 다크 투어의 한 에피소드 정도로 한시적이었다.

 

솔닛은 1부의 네바다 핵실험장을 주제로는 무엇보다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핵실험의 파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긴 시간 지속되는지에 대해 현실감을 갖게 만든다.

 

네바다의 사막을 걸으며 자연 속에서 발견한 지식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나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 문제까지 통찰한다. 한 예로 그 앞에서 양초로 달려드는 나방은 핵실험 책임자들과 방관자들이 핵실험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로 이어진다.

 

핵실험이 자연을, 결국엔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은 24000년이라는 플루토늄의 반감기처럼 멀게 느껴져 당장엔 없는 사실처럼 취급된다. 단어가 실제로 갖는 의미와 체감하는 정도의 차이에 대해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은 그의 훌륭한 저작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속속들이 감지할 수 있다면 이 단어는 아이들이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와 같은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야 한다. 새로운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야만의 꿈> 1부는 핵실험이란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데 걸릴 시간의 길이를 단축시키고 우리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다.

 

2부에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통해 자연을 보존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단순히 자연보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장소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미국의 역사를 면밀히 파고들어 더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국립공원 조성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일면만 보고 있던 이들에게 같은 이유로 고향에서,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는 식이다. 낯설어 어렵게 느껴지는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주제와 동떨어진 같으면서도 결국 중심에 가 닿는다. 눈을 감고 여기저기 만져보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더듬었던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독서였다. 솔닛이 말했듯 이야기는 우리가 그걸 들을 준비가 될 때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내게 희망이란 낙관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낙관주의는 비관주의와 마찬가지로 미래가 예측 가능하고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내게 희망이란 미래의 인지 불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며, 미래에 나타나 결과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 결과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감각이다. 어쩌면 희망이란 나만의 불확실성 원칙일지도 모른다. - P23

내 생각에 네바다 핵실험장에서의 핵폭발은 실험보다는 리허설에 가까웠다. (…) 군비경쟁에서 미국 측의 군비를 관리한 물리학자와 관료 들은 바로 그곳에서 세상의 종말을 거듭 리허설하고 있었다. - P34

보통 위대한 깨달음의 산물로 간주되는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의 탄생은 너무나도 급속히 황폐화하고 변형되는 땅을 아주 일부만이라도 보존하기 위한 시도의 결실이었다. 국립공원은 몇 안되는 장소라도 다른 많은 장소가 맞이한 운명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한 시도, 아름다움이 퇴색된 나머지 장소들로부터 벗어나 일의 풍경과 분리된 여가의 풍경을 지켜내기 위한 시도였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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