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를 다 쓰지 않고 남겨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녹봉을 다 쓰지 않고 남겨 조정으로 돌려보내고
재물을 다 쓰지 않고 남겨 백성에게 돌려보내고
복을 다 쓰지 않고 남겨 자손에게 돌려보내리.
108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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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에 걸쳐 죽음을 무릅쓰고 방문한 제주도에서 허련은 추사 선생과 더없이 친밀해졌고, 그림과 글씨 또한 성큼 늘었다. 특히 추사 선생만의 독특한 서체를 그 옆에서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추사 선생도 허련의 추사체를 인정할 정도가 되었으니 허련은 이제야말로 자신이 추사 선생의 진정한 제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101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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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61년에 대통령에서 물러나면서 군산복합체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경고했지만, 방정식의 한 부분을 빼먹었다. 그는 군사 - 산업 - 과학 복합체에 대해 경고했어야 했다.
오늘날의 전쟁은 과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군대는 인류의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의 대부분을 선도하고, 자금을 대고, 방향을. 조종한다. 382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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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선생의 독서량과 연습량은 실로 엄청났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인 것으로는 누구에게 뒤져 본 적이 없던 허련이지만 잠깐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추사 선생의 근면함에는 혀를 내둘렀다. 추사 선생은 획하나, 글자 하나를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하는 연습 벌레였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가가 되고서도 끊임없이 뭇 명필들의 서체를 감상하고 연구하며 자기만의 서체를 만들어 나갔다. 68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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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선생은 스스로 스승을 찾아 제자가 된 사람이었다. 박제가가 그랬고, 옹방강, 완원이 그랬다. 추사 선생의 첫 스승 박제가, 청나라에 가서 수레를 타 보는 등 실용적이고 앞선 문물을보고 『북학의』라는 책을 써서 조선을 부강하게 할 방법을 주장한 사람.
정조 임금이 그의 뛰어난 지식에 반해서 ‘견주어 비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평가했던 사람. 추사 선생은 그를 서자라는 신분에 개의치 않고스승으로 택하여 존경하고 따르며 견문을 넓혔다.60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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