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 시험 잘 보며 세상 바꾸기
버텔 올먼 지음, 김한영 옮김 / 모멘토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한 잡지의 소개글에서였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경제나 정치 잡지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날도 여느날처럼 시사IN을 들썩이다 나의 반항심을 자극할만한 기사를 읽었다. 바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다. 그때만 해도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면 시험도 잘 치를 수 있다는 저자의 거래 제안에 헛소리!’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그것이 모순된 말임을 당장이라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마르크스야말로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람이 아닌가! 그와 함께 학생들을 성적으로 상품화하는 부도덕한 A학점이라니! 저자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무모한 망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헤쳐보고 싶었다.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내가 설득 당하는 입장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얄팍한 주머니 사정을 무시하고 이 책을 기어코 사버린 순간 나는 이미 저자와의 거래를 시작한 거다. 하지만 정황상 그 거래가 나쁘지는 않았다는 판단이다. 거래의 결과로 저자의 말처럼 '영혼을 잃지 않고 시험에서 A학점을 따내는 방법'을 손에 넣게 되었다. 나를 옭아매었던 족쇄를 벗어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접하게 된 당시 나는 예상치 못한 방황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진리를 탐구하고 자유를 추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대학은 기업이 돈들이지 않고 학생을 맞춤형 기업인으로 찍어낼 수 있는 공장에 불과했다. 마르크스의 이념과는 달리 배움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수단으로 사용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성적에 대한 치기어린 무관심으로 대항했지만 그것은 곧 학사경고라는 무거운 짐으로 내게 다가왔다. 학비를 벌어야 하는 차가운 현실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암담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렇다, 그제야 현실이 얄미운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순응하라고. 너는 가진자도 아닌 잔말 없이 공부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싫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공부는 항상 시험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그 틀 안에서만 행해져야 하는 꼴이었다.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했고, 시험을 위한 수업이 이루어졌다. 교수님들을 언제나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나는 회의를 느꼈고, 저자의 말대로 교수님들은 '고용된 하수인'에 불과했다. 또한 저자의 '헛소리 빙고'게임을 직접 해보니 몇몇 교수님들의 말씀에 섞인 편향적 사고와 어조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사회적 게임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저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지 못한 나는 부적응자일 뿐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인인 저자 버텔 올먼이 밝히는 존경에 대한 입장은 매우 통쾌했다. 그는 정당한 이유 없이 요구하는 존경, 우리 사회의 위계 구조 안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요구하는 존경을 반대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존경'은 무엇이 정당한지, 그것의 옳고 그름 혹은 목적을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윗사람'을 따르게 하는 일종의 속임수일 뿐인데, '존경'에 대한 강요가 뿌리 깊게 박힌 사회의 문제점까지 그가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러한 사회의 틀에 속박되는 것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하루빨리 나를 붙들어두는 족쇄를 풀어버리고 싶었다. 자유를 꿈꾸는 내게 그저 앞만보고 목표 아닌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일이었다. 저자는 그런 내가 자유의 의미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유라고 다 같은 자유는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자유는 수많은 위조 단어 중 하나일 뿐이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자본가에 의해 고용되고 해고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화려한 이름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그래서 전혀 불만을 느끼지 못하는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자유도 수시로 색깔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숙자와 부유한 부자에게 있어 자유는 다르다. 자유는 언제나 있는자의 편일 뿐이고 그러한 자유는 없는자의 자유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자본주의'에 힘입어 말이다. 그가 헤겔의 말을 빌려 설명하기를 ' 자유는 필연에 대한 인식' 이라고 한다. 우선적으로 우리를 조종하는 힘들에 대한 사전지식을 충분히 터득한 후에야 비로소 무엇을 선택할지에 있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그렇게 되면 '마침내 우리를 지배해온 그 힘들을 장악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둠의 사회에서 자유를 향한 '열쇠'를 찾게 된 것 같아 참 다행스럽단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는 무지에 휩싸여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때로는 비참하게 만드는 이유를 찾아 분석하고 맞서 싸워야 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현실을 회피하는 반항 아닌 반항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진정 맞서야 하고 마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보이지 않는 공포란 무엇인지, 그 그림자의 실체를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다. 이제 내 앞에 모습을 보인 사회의 실체와 그것이 선사하는 공포를 제대로 파악하고, 어둠의 손아귀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내 몫이다. 나의 신념을 잃지 않고, 목적 없는 교육의 노예가 되지 않는 당당한 A학점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내 몫이 아닐까.

 

 

앞으로 남은 대학생활 동안 공부하면서, 그리고 내게 남은 날들을 살아가면서,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를 확고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거래가 단순히 A학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공부가 그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공부하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고 의로운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열쇠는 나 자신에게 있던 셈이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부조리의 어둠 속에 묻혀있었던 열쇠를 찾은 셈이다. 사실 족쇄에 계속 붙들려 있을 것인지, 열쇠를 찾아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그건 우리의 몫이다. 삶에 있어 배움을 멈추지 않는 우리 모두, 자유를 주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P.S: 마지막으로, 냉혹한 현실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면서도 그 현실에 너무 주눅들지 않도록, 지루하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준 저자의 배려와 유머감각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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