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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평점 :
예상치 못한 수작이었다. 이 정도면 제목을 잘못 지은 게 아닐까 싶다.
책을 받을 때만 해도 과학 발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여겼다. '지구를 구할 여자들'이니까.
맞으면서도 틀리다. 이 책은 단순히 위대한 과학자들의 일대기를 나열해 놓은 것 그 이상이다.
표지의 날개를 읽을 때부터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며 읽었다. 성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회는 얼마나 발전에 해로운가.
작가가 과학사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알리는 대표 주제이다. 그 방법이 단순히 '여기 여자 과학자가 있다. 그러므로 과학사의 발전에는 여자가 필요하다'와 같은 식이 아니다. 책은 그 너머를 바라본다.
우주복을 만들 때 필요한 기술은 여성용 속옷(거들)에 쓰이는 기술과 같았으므로, NASA는 큰 거부감을 느꼈다.
가방에 바퀴를 단다는 생각(캐리어)은 진즉부터 나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남자는 모름지기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으므로, 그들은 더 편하게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이 놀라운 발명품을 거부했다. (그럴 거면 포크레인이나 지게차도 쓰지 말지 그래)
책에서는 이런 식의 성고정관념에 빠진 사회가 그 덕에 얼마나 비합리적인 길을 걸었는지 알리는 사례가 수업이 많다.
단순히 '여자라서 안 돼'의 문제를 뛰어넘어 그러한 일그러진 사고방식이 인류의 발전을 막은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후자 같은 내용은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페미니즘이 왜 모두를 위한 운동이라고 하는지 절감했다.
효율적인 발명이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곤충 쿠키라는 멋진 단백질 보충식이 나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를 거부한다(사실 나도...) 의식이 기술을 이긴다. 내면이 바뀌지 않는다면 외적인 영역은 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공학의 발전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2022년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전히 사회는 성고정관념으로 가득하다. 가장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성공한 사람은 여성이지만 이런 내용은 '개인의 특이함'으로 돌린 채 여자는 타고나기를 운전을 못한다 말한다. (그런 사람들을 남자답게 그냥 걸어 다니길)
코딩은 본래 여자의 본능에 알맞은 일이라고 여겨졌으나 (컴퓨터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해야 하는 일이라 여성적인 일이란다) 그 일이 돈이 되기 시작하며 비범한 수학적 두뇌를 가진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둔갑했다.
더 나아가면 왜 여성적인, 여자가 더 두각을 보이는 일들은 경제적으로 홀대받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앞으로의 세상을 상상해 본다. 책에서는 '여성적으로' 여겨지는 영역이 가장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일로 남을 것임을 알린다.
체스 마스터 몇 십 명을 이길 수 있는 인공지능은 진즉에 나왔지만 아직도 청소로봇은 동네 아주머니 하나 못 이기니까 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떠한 영역으로 나아가야 할까. 생각이 한 층 성장한 듯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