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 창비청소년시선 38
신지영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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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니. 내가 신청한 도서서평이라지만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았다.

어렸을 적 몇 번 시집 읽기에 도전했으나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열었던 시집은 따라가기 어려운 비유적 표현과 감정선이 가득했다.

하지만 '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를 접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는 2021년에 나온 창비 청소년 시집으로,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잠시 목차를 살펴보자.

제1부 발견하고 보니 나였어

무쓸모

나부랭이

그릇

다 맞는 말

그 개에 대하여

사춘기

밥과 똥

바늘구멍 속의 세상

닮다

35도의 아침

거리

어쩌면 꽃은

제2부 누구나 엄마가 있지

감상적

안방 대신

동화

얼룩

젖소에게 미안해

엄마는 커서

어려운 질문

고장 난 엄마

이사

쌍기역

제3부 우리라는 다정함

어르신 집

수포 삼대

할매 냉면

유자차

비둘기 부부

유배지

원룸

첫 번째입니다 1

첫 번째입니다 2

같은 길

발견

등대

제4부 괜찮다! 아직

나무네 동네

송충이

비만 놀이터

기다리는 아이

깜장 비닐 봉다리

시장

버릇

카산드라 콤플렉스

튼살

비대면 수업

돌멩이

먼치킨은 없다

발문

시인의 말

시집이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며칠 만에 술술 읽었다.

이 책의 비결은 무엇일까. 어떻게 가독성과 감동을 모두 잡은 걸까. 작가의 입장에서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다.

(시 전체를 옮겨 적을 경우 저작권 위법일까. 자신이 없어 일부만 필사하였다.)

● 기본적으로 좋은 표현력

잿빛 솜사탕, 매연을 뜯어 먹으며

피곤이 우거진 첫 버스를 타요

썩어서 동그랗게 구멍 뚫린 삶

누구는 시간을 갉아먹은 흔적이라고도 했죠

- 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일부), 신지영-

언뜻언뜻 보이는 표현들에서 작가의 문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작가 신지영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단어들을 주로 사용한다.

단어 속 압축된 작가의 뜻을 풀어내려 애쓰거나 몸속 온갖 감각을 끌어올려 느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알고나 있을까

자신들 웃음소리보다 더 연약한 작은 몸뚱이를

송충이를 잡아 보면 안다

조금만 세게 눌러도 터질 듯 무른 몸

손안으로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털들

연하고 부드러운 마음 지키려고

무엇보다도 험해진 몸뚱이

- 송충이 중, 신지영-

'세게 눌러도 터질 듯하다'라는 표현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흡입력을 가지는 이유는 다음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 와닿는 소재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서민적이다.

뜨거운 열정을 노래하기 보다 오늘 본 장사꾼 아주머니를 이야기한다.

사회와 맞서 싸우지 못하는 좌절 대신 길에서 마주치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머뭇거림에 집중한다.

집중하는 대상이 우리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소중하다고 인지하고 있으나 거기에서 그치는 존재들이기에 시는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앞서 적었던 '송충이' 시를 앞뒤를 붙여 살펴보자.

알고나 있을까

자신들 웃음소리보다 더 연약한 작은 몸뚱이를

송충이를 잡아 보면 안다

조금만 세게 눌러도 터질 듯 무른 몸

손안으로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털들

연하고 부드러운 마음 지키려고

무엇보다도 험해진 몸뚱이

한 번만이라도 잡아 보면 안다

서러워져 자신을 지키는 것들은

얼마나 말랑거리는 슬픔을 가졌는지를

- 송충이 중, 신지영-

송충이는 무르다. 이걸 아무리 실감 나게 묘사해 봐야 곤충학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송충이가 '자신들 웃음소리보다 더 연약한 작은 몸뚱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말랑거리는 슬픔'을 가진 주위의 존재들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철거민 부부와 비슷한 처지의 집주인이 비로소 마음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자주 접하지 않아 와닿지 않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수많은 소외자들을 글에 담는다.

다문화 가정('얼룩')을, 한부모 가정('젖소에게 미안해')을, 홀로 남은 아이를....

(사실 위의 표현이 적합한 지 모르겠다. '섬'에서 나오는 것처럼 붙어 있던 육지를 굳이 말로 떨어뜨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이 시가 그들에게 위로가 될지 어쭙잖은 기만이 될지는 알 수 없기에 조심스럽다.

적어도 나에게는 주위 사람들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다정함을 담을 수 있는 자극이 됐다.

●깨달음을 풀어서 설명하다

시는 압축적이라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에 들어있는 뜻을 내가 알아서 찾아내야 하는, 수능 수리영역 30번 같은.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은 주로 에세이였다. 얻은 교훈을 몇 문장으로 줄여서 말하기엔 구구절절했다.

'바늘구멍 속의 세상'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시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할머니 대신 실을 꿰었지

실은 허공과 바늘의 경계를 자꾸 뭉그적거릴 뿐

바늘구멍을 시원하게 통과하지 못했어

(중략)

내가 다가갈수록 쇠의 구멍은 점점 커다래지고

온 집 안이 구멍안으로 들어 오고 있었어

허공과 구멍 속 세상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문득 내가 보는 세상이 바늘구멍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무 작아서 무엇도 담지 못한 내 세상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사실은 세상을 다 품고 있는 게 아닐까

- 바늘구멍 속의 세상, 신지영-

간결하다. 그렇다고 함축적이지도 않다.

시와 에세이의 중간 같은 느낌의 이 시를 읽으며 마음속의 가능성이 열렸다.

그래, 왜 꼭 시가 운율이 딱딱 맞는 짧은 글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렇게도 쓸 수 있는데.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을까.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시야가 넓어진 채로 설레는 고민을 다시 시작한다.

작가의 다른 시집이 나온다면 또 어떤 영감과 감동을 줄지 기대하며 읽어야겠다.

*본 서평은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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