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세계
고정기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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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출판되는 과정에서 편집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 책을 여럿 읽어봤지만 사실 편집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저자와 출판사 정도 까지다. 영화 엔딩부에 화면에 올라가는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 못 하듯이 편집자는 독자들에게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편집자의 세계'를 통하여 편집자가 원고를 읽고 수정하고 출판을 도와주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신인 작가의 발굴, 기획, 출판, 저자와의 소통, 마케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책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바라보는 시야가 편집자의 눈을 통해 확장된 것 같다.

편집자는 많은 원고들 사이에서 보물을 찾는 후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책을 읽지 않고 보물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쌓여있는 원고들 속에 파묻혀 살 수밖에 없다. 독자들 보다 한발 앞서 원고를 뒤적거리면서 세상에 드러내어 저자의 하얀 속살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 편집자의 주요한 역할이다.

매개자로서 편집자는 저자를 도와주고, 살펴주고, 독려하는 배려자가 되어야 하고, 독자들이 원하는 내용들이 담길 수 있도록 하여 이익 창출과 행복감, 지혜, 지식들을 전달한다. 물론 출판사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편집자는 책에 대한 철학을 갖고 시대의 흐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요즘처럼 시대의 흐름에 너무 편성하여 내용의 질적인 측면에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경우는 독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겠지만 분명 현실 감각은 필요하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스티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당대의 미 서부의 농민 개척사를 다룬 시대물로서 편집자인 '파스칼 코비치'의 시대적 감각과 저자에 대한 격려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편집자는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태교를 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편집자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무엇이었는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편집자는 하나의 기능공으로서, 자기의 기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데 날카롭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편집자는 부적격, 부정확, 오보, 허튼소리, 속임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편집자는 재능을 위해서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해서, 그리고 정보의 최대한의 보급을 위해서 싸운다. 편집자는 그래픽 아트에 관한 모든 기술이나,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수단을 활용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다.

편집자는 사고와 추리 그리고 예측에 있어서 두뇌 회전이 빠르다. 편집자는 그에게 행운이 있기를 빈다. 편집자에게는 수많은 역할이 요구된다. 새로운 원고를 대할 때마다 편집자는 새로운 기획과 신인의 등용, 그리고 새로운 형식에 자신을 적응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집자는 자기가 담당하는 신간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실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면서 유연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직업적 소양과 철학적 사고와 행동 방식이 창의적인 기술적 요구가 필요한 다른 직업에서도 분명히 요구되는 내용이다. 물론 멀티태스킹은 일의 집중도를 산만하게 만드는 단점도 있겠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채택하듯이 일에서도 어느 선 까지는 멀티태스킹을 유연하게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양성에서 창의적인 생각들이 솟구치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삭스 코민스가 이야기 한 것처럼 수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힘들겠지만.

죽는 날까지 교정지를 놓지 않았던 한 편집자의 모습에서 삶이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가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나의 선택은 어떤 가치관을 펼쳐 내었는가.

한 권의 책을 출판하기 위한 편집자의 노력은 어머니의 산고와도 같다. 내가 출판한 책들이 독자들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편집자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편집자의 세계'1986년에 국내에 처음 출판되었는데, 20세기 초반과 중반에 걸친 미국 출판계의 유명한 편집자들의 이야기들을 전설처럼 이야기하듯 엮어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편집자의 모습과 나의 역할이 오버랩 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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