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 장강·황하 편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1
김성곤 지음 / 김영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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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과 황허강을 딸 펼쳐진 중국 고대 인문학과 자연 경관, 문화 여행에서 어떤 지혜와 즐거움 그리고 힐링을 경험할 수 있을까? 이백, 두보, 소동파 등 중국의 내로라하는 시인들과 함께한 한시 여행은 고향에 대한 애절한 마음과 자연에 묻힌 나의 영혼과의 어울림을 잘 보여 준다. 전쟁에서 삶의 길을 잃어버린 늙은 시인의 고달픔과 애환을 담은 두보의 시는 '늙고 병들어 외로운 자신을 작은 배로 떠도는 몸'으로 표현했는데 참으로 애절하다.

 

예로부터 동정호를 들었더니,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네

오나라 초나라까지 동남으로 터져 있고

해와 달이 밤낮으로 이곳에서 떠오르네

친척도 친구도 소식 한 자 없고

늙고 병들어 외론 배로 떠도는 몸

고향 북쪽은 여전히 전쟁 소식

누각 난간에 기대어 눈물 콧물 흘리네

 

강 주변에 펼쳐진 자연경관은 산수화가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한 운치 있는 풍경들을 자아낸다. 3천여 개의 봉우리가 빼곡히 드러나 있는 장가계, 2천 년도 훨씬 이전에 공자가 올랐다는 태산, 매가 아니면 오르지 못할 기암괴석 등에는 수 천년을 이어온 전설과 삼국지와 초한지의 전설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에 부끄러운 경이롭기 짝이 없는 자연 경관을 저자는 자신의 시로써 담백하게 표현하는데, 옛사람들의 흔적과 경치에 빠져든 자신의 모습을 마치 시간을 뛰어넘어 한 장소에서 수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함께 이야기하듯 담아냈다.

특히 산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와닿았는데, 높이 올라야만 볼 수 있는 산 맥과 기암괴석, 넓게 펼쳐진 구름과 강의 모습들은 내 마음을 그곳으로 향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뭉클함이 저자와 나를 연결하는 것 같다.

 

내가 어제 올랐던 가평군에 있는 운악산의 병풍바위 능선은 네 발로 기어서 가야 하는 힘든 코스였고, 하산 길 또한 한 걸음에 내디딜 수 없는 곳이 많아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하산 길 도중에 고목 한 그루가 손잡이가 되어주어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를 따르던 중년 부부가 "참으로 고맙다 나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고된 산행길에서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안내자와 지팡이가 되어주는 나무를 생각하니, 나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 나무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닌지. 나를 위해서만 살았던 삶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과 중년 부부의 말이 하산하는 동안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맴돌았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도 그러했으리라.

 

책에는 현자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드러나있는데, 북송 시대의 지식인들은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 한 후에 비로소 즐거워 하라"라고 하는 말이 인상 깊었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리더들의 마음이 현재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속되어 부자유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뜻하지 않게 자연 절경에서 얻는 여유로움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 소동파의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태수의 신분에서 미관 말직으로 밀려난 소동파가 청풍명월을 '적벽부'를 남겼는데, 늙고 초라한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삶의 끝자락에서 깊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모습이 나의 모습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역사 소설 속 주인공과 전쟁의 상흔이 서려 있는 장소들은 여행의 의미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것 같다. 삼국지의 장비가 부하에 의해 죽임을 당해 몸과 모리가 따로 모셔져 있는 사당, 중국 곳곳에 있는 관훈장의 사당이 꽤나 인상적이다. 초한지의 항우가 가장 용맹하고 전투력이 강하지만 유방에게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신이라는 걸출한 무장 덕분에 유방이 항우를 이길 수 있었지만, 사실 한신은 항우를 먼저 찾아가 자신을 써달라고 했지만 항우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항우 혼자서도 충분히 한나라를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이 그를 유방으로 가도록 했고, 결국 한신에게 패하고 만다. 한신을 의심하면서도 모든 인재를 수용했던 유방의 지혜로움이 시대를 지나도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교시절 이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중국 한시를 책을 통해 만났다. 시 속에 베여있는 당대 지식인들의 호기로움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학창시절의 당당했던 호기로움은 다 어디에 갔을까.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기세가 조금씩 세상과 타협하면서 옛 것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도, 유년 시절 때 즐겼던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장강과 황하를 따라 펼쳐진 광대한 풍경속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았던 시인들 처럼 그런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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