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름? 주민등록번호? 성형하지 않은 얼굴? 타인의 평가?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전체 170페이지 정도의 두껍지 않은 소설이다. 읽은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 참 재밌다. 마지막 반전도 재밌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바이러스처럼 자라는 독서 후폭풍이 세다, 아주, 매우.

 

주인공인 살인범은 과거 수사기법이 뛰어나지 않았던 시절 악명을 떨친, 현재는 그저 평범한 노인이다.

어느 날 주인공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는 혼란스러워 하지만 그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은희.

과거 자신이 죽인 부모의 자식인 은희는 주인공이 딸처럼 키우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름은 박주태.

사냥을 즐기는 듯한 인상의 그에게서 뭔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주인공은 영화 <메멘토>처럼 끊임없이 기록을 해야 한다.

녹음하고, 메모하고...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메멘토>를 모르는 분들은 수애의 알츠하이머 연기로 유명했던 드라마 <천일의 약속>을 떠올리시면 된다.

희미한 기억 속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에 주인공인 살인범은 알츠하이머와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소설 속 반전은 어쩌면 우리가 예상했던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반전의 규모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소설, 내가 어디부터 잘못 읽었는지가 희미하다는 것이다.

병에 걸린 건 소설 속 주인공인데, 그 병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나에게 전염된 기분이다. 

 

진행되는 병에 주인공의 머리는 하얀 백지처럼 변해간다. 자신이 죽인 게 누구인지, 진짜 죽인 것은 맞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건이 벌어진다면 범인에 대한 처벌의 수위는 어디까지 올려야 하는 것일까.

기억도 못하는 노인,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사건...법에 관해서는 무지한 본인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질문이다.

 

포스팅에서 처음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조건...이 책에서는 '기억'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당신과 다른 확실한 이유, 기억. 미래 SF영화처럼 유전자 조작과 기억이식이 가능하지 않은 이상

기억(혹은 추억, 혹은 감정)은 내가 남과 차별화되는 분명한 근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내 기억이 믿을 수 없는 거라면...정말 소름끼치게 무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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