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0
야마다 에이미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텐 짱, 죽어버려!"

총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작품의 각 챕터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각 챕터의 시작은 작품 속 주요인물 중 한명의 부고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끝은 그 중 특히 주인공이라 할 만한 히토미가 역시 특히 주인공이라 할 만한 신타에게 속으로든 겉으로든 하는 말 "텐 짱, 죽어버려!"라는 구절로 끝난다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는 살짝 변형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전체적인 형식은 "죽음"이라는 테마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 "죽음"의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은 이 작품을 읽는 재미 혹은 감동의 하나다.

작품에는 4인방이 나온다. 히토미, 신타, 치호, 무료다. 그러니 챕터도 4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네 번째 챕터에는 형식의 변형이 있다. 어떤 변형일까...? 네 번째 챕터에는 부고가 두 번 실린다. 그것은 모토코의 부고다. 이 작품에는 그러니까 사실은 다섯 명의 주요인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토코는 스스로 자처해서 4인방에 끼지 않는다. 잘 어울리면서도 그 4인방에 끼는 것은 사양한다. 작품에서 4인방은 각각 성욕, 지배욕, 수면욕, 식욕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모토코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문>을 읽으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도 역시 하나의 재미다.

각 챕터에 나와있는 부고를 보면 주요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 어떻게 마감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초등 2학년, 초등 5학년, 중학 2학년, 고등 2학년...각 챕터마다 3년의 터울을 두고 성장하고 있는 4인방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들의 관계가 세월과 함께 어찌 변하는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부고부터 먼저 다 읽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주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알기 위해 꾹꾹 참아가며, 아껴가며...순서대로 읽는다. 아껴둔 그 인내심은 충분히 가치를 가진다.

<학문>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살면서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나의 과거를 회상해보지 않았나 싶다. 3년씩 흘러갈 때마다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면서 그 즈음의 나에 대해, 나의 친구들과의 일에 대해 참으로 많이도 회상했다. <학문> 자체도 매력적인 소설이었는데 거기에 회상의 시간들이라는 선물까지 받은 것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갸우뚱 정도는 쉽게 잊어줄 수 있게끔 매력적인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닌 작품이다. 목소리를 낮추지만 사회, 정치적 모순을 꼬집고 있는 면도 그렇고, 일본의 사회문화적 특색을 느낄 수 있는 점도 그렇고, 부분부분의 재미, 전체의 전개에 대한 호기심 등... 중간에 읽기를 멈추게 되는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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