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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평점 :
올해 읽은 소설 중에 이렇게 감정 이입하며 읽었던 소설이 있었나? 그것도 흥미롭고, 다채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SF소설을 읽는데 말이다.
아마도 본문을 읽기 전 작가의 인터뷰에서 이미 난 감정이입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기 외에 주의를 쏟을 대상이 절실히 필요해서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아마 흩어지는 나 자신을 어딘가에 잘 매어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 / 발췌
내가 그랬다. 아이를 재워두고 비로소 육퇴를 내적으로 외치며, 책을 읽기도 하고 필사를 하며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채우는 새벽시간. 나는 책에 나를 잘 매어놓았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보호자는 그때까지의 생활로부터 갑자기 뚝 잘려 나와 낯선 세계에 던져지게 됩니다. 아기와 나만 존재하며, 내가 아이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 독방의 시간이 닥치죠. / 발췌
이경 작가의《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는 6편의 단편이 모여있는 소설집이다. 그 중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와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는 육아라는 소재로도 SF가 될 수 있고, 보통 육아의 주체자인 엄마 그 자체도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엄마로 불리는 순간부터 당연함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그 순간을 짓누르는 괴로움이 전혀 덜어지지 않는 대답이요." 을 매번 듣게 되는데, 당장 책을 덮으면 마주하는 찐현실과 낯설지만 매력적인 SF설정들이 만나니 묘한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이 또한 위로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경 작가의 다른 글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줄여서 한스여 ㅋㅋ는
대화형 AI가 장착된 젖병 소독기의 사용 후기라 할 수 있다. 대화형AI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얼굴을 하고선 미주 앞에 나타는데, 데이터 분석에 기초해 가장 선호할법한 모습으로 구현이 됐다는데, 어디서부터? 왜? 그의 얼굴이여야 했는지 추론을 해보지만 끝내 답을 찾진 못한다.
미주, 방탄소년단 RM의 열렬한 팬이구나.
꺅! 그러니까! 나한테 친화된 천사라면 RM이지! / 발췌
나도 최근에 겪었던 일들이라 육아동지로써 주인공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주양육자와 보조양육자에 분명한 온도차이가 보였다. 단순히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육아 상황, 몸의 변화에서 오는 우울함으로 단정하긴 쉽지 않는 특수한 상황에 갑작스레 홀로 떨어진다.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기분은 들쑥날쑥하지만, 육아는 계속된다. 아이를 함께 케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나누며, 혼자라는 고립감을 털어내기 위한 환기가 꼭 필요하다. 시원시원하게 써내려간 문장에서 한 번, 몸의 편안함에 마음을 다독여줄 수다가 더해진다면 이건 정말 구매각 아닌가? 라는 생각과 육아는 역시 장비발이다. 라는 내 결론에 힘을 더 해줬다.
읽는 내내 우리집에 자리잡고 있는 젖병 소독기를 힐끔힐끔 쳐다보게 됐다. 우리집에 AI 장창된 젖병 소독기를 한 대 놓는다며? 어떤 모습일라나? 내 알고리즘은 누구를 향하고 있더라??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