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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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읽었던 책 들 중에 읽었던 시집을 떠올려 봤을 때,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나에게 '시'라는 분야는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는 것이고, 그곳으로 향하는 시선이나 관심은 그저 작은 호기심과 동경이 섞여있을 뿐이었다. 마음에 와닿는 시구절을 만났을 때 그것을 옮겨 적으며 느꼈던 두근거림. 자구 곱씹어 내뱉어보는 문장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나와 '시'사이의 거리였고, 오롯이 시인의 감정과 함축된 의미와 감성들을 흡수하지 못한 채 문장 그 자체가 주는 울렁거림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마주하게 됐다. 그것도 무려 시에 관한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내용들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낯섦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책이 마음에 든 건 제목부터 너무 멋들어졌기 때문이다. 시와 서먹서먹한 나에게 딱이다 싶을 정도로.
시는 무엇이며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시詩라는 한자를 해자解字하면 "일정 음률에 따라 마음을 헤아려 노래하다" /43


산문 쓰기는 불을 밥을 짓는 것에 비유되고, 시 쓰기는 발효시켜 술을 빚는 것에 비유된다. 청나라 문인 오차오 -화롯가에서 시를 말하다 중 / 44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 50

 

이미 명강의로 소문난 '서가명강'은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7번째 책이자 강의이기도 하다.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편하게 보고, 들을 수 있으며, 1 대 1 수강생이 되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김현균 교수가 들려주는 강의는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4명의 시인의 낯선 이름과 낯선 문학과 낯선 배경들이 등장한다. 낯섦을 넘어 어려움에 진도도 더디게 나가는데, 그 또한 마음을 달리 먹으니 재미로 다가왔다. 책의 시작을 열고 있는 좋은 독자에 대한 정의! 규범을 초월한 원초적 즐거움에 몸을 맡기는 독자! 모르는 단어와 용어는 사전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 보니 포스트잇을 점점 늘어났지만,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참고로, 새로운 지식이 쌓이는 식의 쾌락 독서! 너무 좋다! 그리고 신기하게 낯설고, 어렵게 다가온 책이지만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리 그 이름부터 생소하고 낯설었던 라틴 아메리카 대표 시인들의 이름들이 더 이상 걸림 없이 자연스레 입안에 맴돌다 뚝하고 뱉어져 나왔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신기하고, 뿌듯함이 느껴졌다. 시작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역사적 사실과 시는 무엇인가. 시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해 4명의 시인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사회적 분위기부터 역사적인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 그 안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보며 위대한 시인들의 삶 또한 큰 틀에서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희로애락을 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는 무엇이고, 시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시의 막연한 동경을 구체화시켜준 책을 만났다. 낯선 이름, 낯선 라틴아메리카 문학, 생소한 용어들을 만날 때마다 배움이 주는 설렘 때문에 읽는 맛이 났다. 어렵게 읽히던 시인들의 이름이 툭툭 자연스레 나오고, 그들의 삶 이야기와 둘러쌓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역사적 사실이 더해지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전문지식이 주는 배움과는 조금 다른 앎.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고독과 외로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시인의 삶 거기서 오는 공감과 이해가 주는 앎.


소개된 4명의 시인 중 가장 마음에 갔던 세사르 바예호, 젊은 나이에 교향을 떠나 줄곧 이주자의 길을 걸었던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들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고향을 마음에서 내려놓은 적은 없다. 비록 죽는 날까지 그리고, 죽어서도 다시는 고향으로 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한 평생 가난과 병으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살았던 바예호. 그리고 그 고통이 바예호 문학의 원천이었을 거란 사실이 한없이 쓸쓸하게 다가왔다. 삶을 위해 나아가야 하지만, 병든 몸과 지독한 가난 때문에 더 이상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그 불확실함이 주는 고통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감히 그 고통과 상실, 고독을 이해하겠다. 말할 수 없었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시를 써 내려갔을 때 보예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진실은 살고 싶은 마음을 역으로 노래한 게 아니었을까? 생계를 위해 직업을 따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가 세상에 남긴 시집은 세 권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최정상에 서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당신이 잠들도록 난 눈이 되어 하염없이 내렸네.라는 근사한 비문을 가진 시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詩 비참한 저녁 식사 - 세사르 바예호

이제껏 고통을 겪었는데 언제까지
의심을 품고 살아야 하는 걸까 …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식탁에 앉아 쓰라림을 삼켰다. 배가 고파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우는 아이처럼 …
끝없는 아침나절, 누구도 아침을 거르지 않고
타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건 언제쯤일까.
이곳으로 데려와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언제까지 이 눈물의 계곡에 머물러야 하는 걸까.

 

詩 박수와 기타 - 세사르 바예호

지금,
손을 잡아끌고, 우리 사이로,
너의 감미로운 사람을 데려오렴.
함께 저녁을 먹고, 잠시 하나의 삶을 두 개의 삶으로 만들자.
하나는 우리의 죽음을 줘버리자.
지금, 함께 오렴. 제발
노래를 좀 불러다오,
그리고 네 영혼으로 기타를 쳐다오, 손뼉을 치며.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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